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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이 다시 되살아난 이유가 불편하다

[#교권이_아니다 ①] 그날을 자축하는 것은 '교권이 아니다'

등록 2021.05.12 07:50수정 2021.05.12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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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은 원래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있는 '교육권'의 준말이지만 사회적으로 교사의 권리라고 정의내려진 이후에는 '교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돌림노래만 들린다. 2021년 스승의날을 맞아 연대체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는 연속기고 '#교권이_아니다'를 통해 교권에 대한 논의를 펼쳐보고자 한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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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념일은 뜻깊지만 그 역사가 아름답지만은 않다. 전쟁 직후 국제적 빈곤 상태에서 양육과 경제활동이라는 양쪽의 부담을 지는 어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정되었던 어머니날(5월 8일, 지금의 어버이날)이나 장애인 인권 실태가 너무 참혹하지만 일 년 중 가장 화창한 날 하루라도 외출을 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정했다는 장애인의 날(4월 20일)처럼 말이다. 다가오는 5월 15일, 스승의날에는 어떤 역사가 있을까?

스승의날은 1963년 충남지역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은사의 날'을 정하고 사은행사를 개최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듬해인 1964년 청소년 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는 5월 26일을 '스승의날'로 지정하고 행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한다. 그러다 1973년, 정부가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기념일을 대폭 축소하는 지침(동아일보(1973년 3월 24일), '각의의결 각종기념일 27개 축소')을 발표하면서 폐지된다.

폐지된 스승의날을 어떻게 다시 기념하게 됐을까 

1981년, 서울에서 한 중학생이 유괴되고 결국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사 결과 사건의 범인은 해당 학교 교사로 밝혀졌다. 심지어 제자인 수십명의 여고생들에게 위계형 성폭력(당시에는 불륜관계라는 말로 기사화) 가해자로 지목되었고 그중 두 명을 유괴와 살인에도 가담시켜 사회적 충격을 더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를 상실케 하는 이 사건은 교원의 윤리적 문제를 부각했다.

그러나 교육계의 대응은 '실추된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 역시 공감해 1982년을 '교권확립의 해'로 설정하고 폐지되었던 스승의날을 다시 법정 기념일로 제정했다. 지금의 스승의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당시 대한교육연합회(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권의 확립을 위하여 교원윤리헌장과 사도강령, 사도헌장을 발표하기로 한다. 부활한 첫 번째 스승의날 기념식에서 정부 주관으로 사도헌장이 공식적으로 선포되는데, 내용을 압축하고 있다는 전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의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과 내일의 국운을 좌우한다. 우리는 국민의 교육의 수임자로서 존경받는 스승이요, 신뢰받는 선도자임을 자각한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는 검사윤리강령을 검사들이 제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명이 선창하자 다른 검사들도 모두 일어서 검사윤리강령을 외친다. 검사윤리강령 역시 만들어진 배경은 유사하다.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지자 자체 개혁의 일환으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은 사뭇 다른데, 검사윤리강령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검사는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법의 지배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롭고 안정된 민주사회를 구현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검사는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스스로 높은 도덕성과 윤리 의식을 갖추고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이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검사는 주어진 사명의 숭고함을 깊이 인식하고 국민으로부터 진정으로 신뢰받을 수 있도록 다음의 윤리 기준과 행동 준칙에 따라 실천하고 스스로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시대의 차이는 있다. 사도헌장은 1982년에 선포되었고 검사윤리강령은 1999년에 제정되었다. 하지만 내가 선도자임을 자각한다는 강령과 신뢰받을 수 있도록 책임을 진다는 강령이라니,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비교가 된다. 교사라는 직업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도 성찰이나 반성보다는, 선도자임을 자각하고 보다 위에 서는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해야 하는가.

강령을 만든 이후도 상반된다. 검사윤리강령은 처음부터 법무부 훈령으로 제정되었고 4차례에 걸쳐 시대에 맞게 개정되어 왔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두고 강령을 어긴 것인지 아닌지 논쟁이 있을 정도로 검사윤리강령은 기능하고 있다. 교사들이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도헌장과는 다르다.

꼭 훈령이나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게 법으로 다 정해질 필요는 없고 윤리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문화적으로 윤리성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간호대 학생들은 임상실습을 나가려면 교수와 선배들이 참여한 앞에서 '일생을 의롭게 살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는 내용의 나이팅게일 선서에 참여해야 한다.

이 선서식은 간호대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학생들은 이날을 위해 간호복을 준비하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도록 외우며 가족이나 지인들을 초대해 기념하기도 한다. 같은 직업사회 내에서 윤리의식을 공유하고 개인적 이득보다 공공성에 대한 의무를 지겠다고 약속하는 일이다.

강령이 있다는 것이 좋은 직업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권력 또는 정보의 독점 가능성이 높은 직업은 직업윤리가 더 요구되고 그래서 검사나 의료인들의 강령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교사 역시 전통적으로 큰 영향력, 스스로보다 훨씬 취약한 상대(학생)를 주로 대하는 근무환경, 정보의 집중 등으로 권위적이기 쉬운 직업으로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교사의 직업윤리는 어떤 과정을 통해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형성되나. 교사의 경우 교육공무원으로 채용될 때 국가공무원법에 명시되어 있는 '선서의 의무'에 의거, 복종의 의무 등을 선서하는 것이 유일하다. 교사가 아니라 공무원으로서의 선서다. 한계는 있지만 어쨌든 교육자로서 공통의 직업관을 형성하고 윤리의식과 신뢰를 회복해나가는 노력으로 선택했던 사도헌장은 기념식에 한 번 선포되고는 사라져버렸다.

'교권'이라는 말만 공허하게 반복되는 스승의날

스승의날을 교권 확립의 계기로 삼겠다는 시도는 그 뒤에도 이어졌다. 특히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생인권과 교사의 교권 간의 대립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더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5월 15일 선포되었던 대구교육권리헌장이다.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커지고 있을 시기였고, 특히 대구는 2011년 말 학교폭력으로 한 학생이 자살하면서 학교 내 인권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 뜨거웠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는데 당시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대신 대구교육권리헌장을 스승의날에 맞춰 선포했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 보호자의 교육권을 조화롭게 실현하겠다는 취지를 밝혔으나 이 역시 선포가 끝이었다. 후속되는 조치나 구체적인 노력은 없었다.

2019년 스승의날에는 세 번째로 제정 시도였던 경남학생인권조례(안)이 경상남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부결됐다. 도의회 안건 중 학생인권조례는 가장 첨예하게 지역사회에서 다루어지고 있던 쟁점이었고 그래서 아무도 학생인권조례가 부분위원회 첫날에 부결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5월 15일에 학생인권조례가 부결된 것을 보고 '스승의날 선물'이라고 표현하는 인터넷의 댓글들은 스승의날과 교권이 무슨 의미인지 질문하게 한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교사의 권리가 지켜지는 걸까?

왕보다는 약자의 옆에 서는 스승의날이길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경북 구미대학교 홍보대사 '키우미' 학생들이 4월 28일 캠퍼스에서 열린 부모와 스승을 위한 '사랑의 엽서 쓰기' 행사에서 엽서를 쓰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경북 구미대학교 홍보대사 '키우미' 학생들이 4월 28일 캠퍼스에서 열린 부모와 스승을 위한 '사랑의 엽서 쓰기' 행사에서 엽서를 쓰고 있다.연합뉴스
 
스승의날이 5월 15일이 된 이유는 그날이 세종대왕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가 한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 날짜를 정할 때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정해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스승의날이 되면 행사장마다 학생들이 '선생님, 감사합니다'라며 머리를 숙인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감사편지쓰기 공모전을 개최한다. 학교마다 수업시간을 할애해 교사에게 감사편지도 쓴다. 어느 집단이 스스로 이렇게 감사를 받기 위해 공식적으로 노력할까. 왕이 있던 시절, 스승과 왕이 같다고 했지만 지금은 왕도 왕좌도 없이 평등한 사회가 되었는데, 교사는 교단 위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뭘까.

내가 있는 경남 지역에는 2020년 교사가 학교 내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해서 다른 교사와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 맞는 스승의날이다. 1981년, 학생을 교사가 유괴하고 살해한 후에도 교권확립을 내세웠던 그 역사를 반복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지 않을까. 올해 스승의날에는 왕처럼 존경받기보다는 교사 스스로 성찰하고 약자와 함께 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은 지배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 교육,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학교 밖에서도 말하기를 선택한 교사들의 모임입니다. 2021년 4월 보궐선거에서 '청소년을 존중하는 선거가이드'를 만들고 배포하는 것으로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www.facebook.com/misc.teacher
#교권 #교사 #스승의날 #교사잡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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