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 3월 가계부
정누리
둥지가 바뀌는 순간
이직을 결정하자마자 모든 일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회사 인수인계, 자취방 정리, 새로운 집 구하기, 짐 정리하기, 이사 견적 내기, 중고거래 등.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있는 대로 잡동사니를 팔았더니, 그달 중고거래 앱 가계부 실적이 약 180만 원을 기록했다. 친구들이 '집안 살림 거덜 냈냐'며 놀라워했다.
주말마다 수원으로 가서 집을 봤다. 세입자와 시간을 조율해야 하다 보니 하루에 많은 방을 봐도 2~3개밖에 볼 수 없었다. 어디 구, 어디 구, 어디 구. 처음 듣는 지역에 각각 동네 특성은 무엇인지. 어렸을 때부터 나고 자란 곳에서 혼자 사는 것과, 아무 연고 없는 왕복 3시간 거리에서 새로운 자취방을 구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한정된 금액에 맞춰 짧은 기간 내에 방을 구하려니 기상천외한 방도 많았다. '이 컨디션에 월세 60만 원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곳도 있었고, 창문에 묵직한 쇠창살이 달려있는 방, 호텔을 개조한 방 등등 다양한 타입 등의 방이 있었다.
서너 군데를 더 둘러보고 그나마 시간과 금액, 컨디션이 맞는 적당한 방을 계약했다. 원래 살던 김포로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나도 모르게 부산스럽게 했더니, 중개사분도 덩달아 뛰어다니며 도장을 찍었다.
계약을 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입주 청소와 이삿짐 견적도 내야 한다. 김포는 워낙 오래 살았고, 이사를 자주 했기에 베테랑 업체 서너 군데는 꿰고 있었다. 수원도 그렇겠거니, 하고 조사를 해보는데 웬걸. 괜찮은 청소업체 자체가 몇 개 없다.
그마저도 전화를 해보면 이미 두 달 만큼의 예약은 꽉 찼다. 겨우겨우 청소 어플로 예약을 했는데, 내가 정보 조사를 덜 한 탓일까. 최소 2~3명이 와서 서너 시간 안에 끝낼 거라 예상했는데 한 분이 무려 8시간을 청소하고 가셨다.
그분도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다. 김포로 다시 돌아가기도 애매해 8시간 동안 수원 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이삿짐은 다행히 어플을 통해 수월하게 예약했다. 신청서를 올리면 약 10분 안에 5명의 기사님들이 각각 견적을 보내주는 것이 놀라웠다.
'옮긴다'면 끝인 줄 알았는데,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도와줄 사람은 있는지, 짐 박스 개수는 어떻게 되는지 등등 모든 요인을 고려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것을 일일이 업체마다 설명하려면 힘들었을 텐데 번거로움을 줄였다.
낮에는 퇴사를 준비했다. 알바를 제외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처음이다 보니, 인수인계서 작성도 심혈을 기울여 했다. 아쉬워하는 동료 직원들이 날이 바뀔 때마다 내 퇴사일을 카운트다운해주었다. 내 빈자리를 최대한 느끼지 못하게, 또 만약 후임이 들어온다면 처음 보고도 업무를 파악할 수 있게 모든 업무 현황과 문서 위치 등을 정리해 놓았다.
이렇게 정리를 하니 '기보'를 적는 느낌이었다. 내가 3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을 했었나 싶기도 하고, 그동안 쌓인 데이터가 내가 밟아온 길처럼 보였다. 3년 간 퇴사를 한 번도 생각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만둘 줄은 몰랐거늘. 놀랍게도 깔끔하고 별 일 없다.
퇴사일이 되니 이전엔 전혀 이런 일이 없던 컴퓨터가 자꾸 먹통이 되었다. 과장님이 '퇴사를 하니 컴퓨터가 아쉬운가 보다' 하며 하하 웃으셨다. 언제든 놀러 오라며 다들 손을 흔드셨다. 집에 돌아와 못다 한 감사 인사를 한 분 한 분 드리니, '너는 어디든 잘 적응 할 거야'라는 따뜻한 말이 돌아온다. 둥지가 바뀌는 순간, 이 말이 가장 따뜻하고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