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뚜껑 깨진 날
정누리
뜻하지 않게 청소를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어느 날, 친구가 집에 놀러 와 맛있게 밥을 먹었다. 친구는 대신 설거지를 해주겠다며 부엌으로 나섰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냄비 뚜껑이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있고, 친구는 놀란 표정으로 고무장갑을 낀 채 굳어 있었다. 부엌이 좁아 친구가 실수로 냄비뚜껑을 팔꿈치로 쳐서 그대로 떨어진 것이다. 집이 좁은 것을 누굴 탓하랴.
문제는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유리를 처리할 도구가 없다. 빗자루도 없고, 검색해보니 청소기로 빨아들이다 호스나 필터가 찢길 수 있다고 하니 그것도 안 된다. 상당히 난감했다. 할 수 없이 친구랑 나는 장갑을 끼고 손수 강화유리 조각을 봉투에 주워 담았다.
밤 11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테이프로 저 멀리 날아간 유리 파편을 찍어 눌렀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물을 묻힌 키친타올이나 부직포로 유리파편을 쓸어 담으면 잘 모인다고 한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돌발 상황을 대비해 부직포 밀대를 꼭 구석에 모셔 놓고 있다.
먼지와 함께 쓸어담는 추억들
친구가 집에 놀러 와 같이 잔 날, 친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커튼을 치고 청소기를 돌리는 내 모습을 보면서 "너는 정말 깔끔한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엄마에게 '정리 좀 해라'라는 잔소리를 이십몇 년간 듣고 자라왔는데, 그런 내가 깔끔하다니!
친구가 돌아가고 곰곰이 바닥에 앉아 생각해보았다. 결국 애착 아닐까. 내가 먹고 눕고 생활하는 이 작은 공간만큼은 깨끗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 내 마음도 이처럼 가벼웠으면 하는 바람. 취미란에 '청소'를 적는 사람들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앗, 바닥에 앉았더니 수납장 밑에 먼지가 보인다. 본능적으로 물티슈를 가져와 무릎을 꿇고 바닥 청소를 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하도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으시기에 밀대를 쓰시면 안 되냐 하니, '이래야 잘 닦인다' 하시던 말이 떠오른다. 똑같이 무릎을 꿇고 수납장 밑을 닦는 내 모습이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청소는 내가 걸어온 삶에 떨어뜨렸던 추억을 쓸어 담는 과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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