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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경 속에서도 대동보국단 조직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 / 30회] 중국의 정정은 한 치 앞을 예측키 어려운 반동기로 치닫았다

등록 2021.06.01 17:51수정 2021.06.0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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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관 신규식 선생. ⓒ .

 
혁명가는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규식도 그랬다. 그가 추구하는 혁명의 최종 목표인 조국해방이라는 과제는 죽을 때까지, 죽은 뒤 혼령이라도 추구하고 수행해야 할 사명이고 소명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정세는 불리하게 진행되고 중국의 정정은 한 치 앞을 예측키 어려운 반동기로 치닫았다.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중국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을 공격했다. 독일이 중국에서 가지고 있는 이권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이었다. 독일군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을 장악한 일제는 중국정부에 굴욕적인 '21개 조항'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독일이 갖고 있는 여순ㆍ대련의 조차권, 남만주 일대의 철도부설권 등이 포함되었다.

원세개 정부는 별다른 저항없이 일본의 21개조 요구를 받아들였다. 일본이 원세개의 개인적인 야심을 만족시키는 반대급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은 21개조 요구 협상을 벌이면서 원세개에게 "만일 성의를 가지고 교섭에 응한다면 일본정부는 대총통(원세개)이 다시 더 높은 단계에 오르는 것을 기대한다"라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자기가 황제가 되는 것을 일본에게 양해받는 교환조건이었다. (주석 1) 


원세개는 1915년 10월 '국민대표대회조직법'을 공포하는 등 황제 등극을 위해 적극나섰다. 하지만 인민들은 대부분 이를 반기지 않았으며 국제사회도 거세게 반발하였다. 이로 인해 중국의 정정은 날로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신규식은 정치적 반동기에 곤경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망명할 때 가지고 왔던 자금 중 적지않은 돈을 중국혁명 동지와 경영이 어려운 『민립보』에 기부한 것이 원세개 세력에 발각되면서 체포령이 내리고, 몇 차례 테러의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또 일본총리대신 가쯔라(桂太郞)의 만주방문을 계기로 독립운동가들이 그를 암살하려한 사건의 혐의를 받아 외지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이런 정황에서도 그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원세개 정부의 탄압으로 유명무실해진 동제사를 다시 복구하는 한편 박은식 등과 함께 대동보국단(大同輔國団)을 새로 조직하였다. 박은식을 단장에 추대하고 자신은 운영의 책임을 맡았다. 평양의 한진교, 정주의 선우혁, 만주에 있던 조성환ㆍ박찬익의 협조를 통해 노령에까지 조직을 확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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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박은식 선생 ⓒ wiki commons

 
대동보국단은 신규식ㆍ박은식의 주도로 조직되어, 박은식이 단장이 되었다. 핵심인물은 모두 동제사의 핵심세력으로 판단되며, 따라서 신채호ㆍ조소앙ㆍ한진교ㆍ문일평ㆍ김규식ㆍ선우혁 등도 이에 가담했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추론된다.

이 대동보국단의 이념은 앞서 본 바의 대동사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대동사상에는 박은식ㆍ조소앙이 심취하여, 박은식은 이미 1909년에 국내에서 대동교를 창건하기도 했고, 조소앙은 1913년에 상해에서 아세아민족반일대동당을 조직하기도 했다. 신한혁명당이 1915년 3월에 결성되었으나, 5월의 활동을 마치자 곧 유야무야된 점으로 보아, 대동보국단은 신한혁명당의 실패 이후에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주석 2)



이즈음 그는 상하이에서 조직된 중국인 청년단체 환구중국학생회(寰球中國學生會)에 가입하였다. 발기인은 상하이 푸단(復旦)대학 총장을 역임한 이등휘(李登輝)이다. 남사에 이어 이 단체에 참여한 것은 중국혁명의 주도세력과 연을 맺고 한국독립운동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형을 좇아 망명해 온 셋째 동생 신건식이 항주의 적산(赤山) 부근에서 고려사(高麗사)의 옛 절터를 발견했다. 고려시대 성덕태자(聖德太子)가 항주에 와서 출가할 때 지은 광대한 사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울타리와 무너진 담벽, 건물이 몇 칸 남았을 뿐이다. 


분망함 속에서도 신규식은 고려사 옛 터를 찾아 모금한 돈으로 사원을 다시 세우고 「고려사」란 현판을 새로 써서 걸었다. 그리고 칠언율시 한 수를 지어 감회를 읊었다. 

 적산에 해 기울 제 사찰을 방문하니
 현회 서녘 숲은 산골 마을 같구나
 천년된 미륵상 불조를 우러르고
 만리 밖 객지서 왕손에게 눈물짓네
 사계절 내내 향불은 군생의 복을 빌고
 한 조각 청정한 곳 고국의 혼 있어라
 견디기 어려워 머리 돌려 보는 곳에
 가련타 몇 칸의 옛 사당만 남았구나. (주석 3)


주석
1> 안정애ㆍ양정현, 『중국사 100장면』, 337쪽, 가람기획, 1993.
2> 김희곤, 앞의 책, 65쪽.
3> 『전집①』, 321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독립운동의 선구 예관 신규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신규식 #신규식평전 #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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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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