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 '해외명품 대전 행사장'에서 고객들이 계산을 위해 줄 서 있다. 2020.7.14
연합뉴스
돈을 버는 성인은 명품 허리띠, 명품 가방 정도는 당연히 있어야 하며, 핸드폰은 2년에 한 번씩 교체하고, 집안의 가전제품은 당연히 큰 것과 최신 것으로 구색을 갖추는 시대다. 티브이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이 냉장고를 2대, 3대 돌리는 모습을 보면 "우와! 음식에 진심이군" 할 뿐이다. '경제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경제 논리는 소비 지향의 가치관으로 우리 등을 떠민다. 소비가 예의고 자랑인 시대에 내몰렸다.
몇 년마다 신축 아파트로 이사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이제 와 굳이 '내몰렸다'는 표현을 쓰며 소비에 벌벌 떠는 사람이 됐다. 돈이 없어 메이커를 몸에 두르지 못한 10대를 지나, 꾸미는 일에 관심 없어 명품백을 사지 않던 20~30대도 관통하고, 이제 와 마흔이 겨우 넘어서야 소비 행위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했다.
'소비는 곧 쓰레기다'라고 말하는 <일급경고>(최병성) 책을 읽고 나서야, '경제적,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은 지금, 우리는 미세먼지로 가득한 회색도시와 불안과 좌절이라는 문화적 풍토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알려주는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강남순 등)는 책을 읽고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기후위기를 목전에 두고, 아니 어쩌면 기후위기의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 과연 소비가 자랑이고 예의인 게 맞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 피로 사회에서 우리는 보상심리로 소비를 강요받지 않았는가? 소비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피로한 노동을 해내야 하지 않았나? 그런 소비가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삶의 자율성을 잃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어찌 됐든 나는 명품백을 사지 않았으니 작금의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데 결백한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길을 걸을 땐 일회용 컵에 들은 커피를 들고 다녔다. 그래야 멋있는 줄 알았다. 카페나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휴지는 내 돈 주고 산 게 아니니 양껏 썼다. 흰 면티가 집에 이미 여러 개 있으면서 3장에 만 원이라는 매대 문구를 보고 덥석 또 집어 들었다. 식재료를 잔뜩 냉장고에 채워 놓고는 시간이 지나 물러지고 상해서 못 먹게 되는 것들에 죄책감이 없었다. "버리면 되지 뭐." 쉽게 쓰고 쉽게 버린 것들이 지구를 병들게 했고 결국 나와 내 아이의 미래가 담보로 잡혔다.
다시 저 위에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을 떠올린다. 나의 욕망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 타인의 눈을 의식한 욕망이라는 이야기. 그것을 알아차려야 나와 우리와 지구가 숨을 쉰다는, 깨끗한 공기 들여마시며 어깨 펴고 천천히 숨을 쉰다는 이치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일급경고> 책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조금 더 소박한 삶이라는 불편함을 살아갈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때다'라고 말한다. 내가 망가뜨린 지구, 내가 살려야 하지 않겠나. 그게 윤리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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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그리움을 얘기하는 국어 교사로,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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