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기타 치고 노는 아이들(전교생의 허락을 받아 올리는 사진)
홍정희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란 점은 사춘기 절정의 남학생들이 핸드폰에 의연하며 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학 첫 주 조회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내 전화번호를 저장하라고 했더니 주섬주섬 가방 안을 뒤지고 앉았고 그마저도 안 가져왔다는 학생도 있다. 원래 핸드폰은 대부분 손에 그대로 들려 있거나, 그나마 조회 시간이라는 상황을 참작하여 나름의 예의를 갖추었다고 해도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게 아니던가? 등교하여 핸드폰을 걷어가는 시스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쉬는 시간조차 핸드폰 꺼내 노는 일이 드물다.
어느 날은 아이들의 행태를 유심히 살펴보니 욕이나 비속어도 쓰지 않아 대놓고 물어보았다.
"너네는 욕을 안 하니?"
교사가 학생에게 이리도 비교육적인 질문을 하다니! 허구한 날 학생들에게 "욕을 왜 해?"라든가, "욕 좀 하지 마!" 류의 지도를 해야 하는 도시의 대규모 학교에 있다가 이곳으로 와 보니 욕하지 않는 사춘기들에 놀라 저런 난감한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선생님 앞에서만 안 하는지, 자기네들끼리 있을 때는 어떤지. 나의 우문에 돌아온 아이들의 현답은 이렇다.
"욕 할 일이 없는데요."
심지어 한 녀석은 어린이집, 초등학교도 항상 같은 반이었던 옆자리 친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OO이 욕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나는 감탄하면서도 못내 속세의 티끌이 묻은 2차 질문을 내뱉었다.
"OO아, 너는 속으로도 욕 안 해?"
"속으로는 할 때도 있는데요, 입 밖으로는 안 해요. 그러는 거 별로예요."
아우~멋진 녀석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는 것일까? 주로 자기네끼리 수다를 떨거나, 빈 교실 이곳저곳을 뒤져 찾아온 퍼즐을 머리 맞대고 하루 종일 하거나, 또 어느 날은 보드게임을 찾아와 희희낙락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 늘어선 잣나무에서 떨어진 잣송이를 털어 기름지고 뽀얀 속살의 잣 까먹는 일도 소소한 재미가 된다. 요즘엔 고무찰흙으로 음식 미니어처 만들기에 심취해 세심한 손길로 짜장면 면발을 한가닥 한가닥 다듬고 있는 녀석, <아재개그> 책을 옆구리에 끼고서 선생님들께 맞혀보라고 퀴즈 내는 녀석들 덕분에 신록이 짙어지듯 애정과 웃음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