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건넨 '칭찬'은 교사의 열정과 의지를 일깨워주는 특효약이다.
서부원
아이들은 교사의 칭찬에 목말라 한다. 교사라고 다를까. 교사는 칭찬의 주체고, 학생은 칭찬의 객체가 아니다. 서로의 칭찬과 격려를 먹고 사는 존재다. 누군가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다면,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아이들의 칭찬이라고 답하겠다.
얼마 전 한 아이가 손글씨로 쓴 편지 한 장을 건넸다. 한국사에 흥미가 생겼다며 고마워하는 내용이었다. 나로 인해 인생을 알게 됐다는 과분한 찬사까지 받았다. 선머슴 같은 남자아이에게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종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이 교사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 애쓰듯, 교사도 아이들로부터 존경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로 사랑받기 위한 둘 사이의 상호 작용이 곧 교육이다. 그러한 노력이 없는 곳이라면, 학교는 그저 수험용 지식을 거래하는 영업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기-승-전-'전교조 퇴출'?
편지를 받고 종일 룰루랄라 하던 이튿날, 공교롭게도 포털마다 교사 성과급의 균등 분배를 문제 삼는 기사가 쏟아졌다. 균등 분배에 참여한 학교와 교사 수를 언급하며, 교사 간 경쟁을 회피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기사마다 달린 댓글은 앞다퉈 교사를 성토하는 장이 됐다.
포털의 기사와 댓글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우리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교사들의 교육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육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사 간 경쟁이 필수적이다. 차등 성과급제는 학교와 교사 간 경쟁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차등 성과급제를 반대하는 교사들은 경쟁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신의 교육 전문성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앞장서 차등 성과급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전교조 교사가 교육 전문성이 가장 떨어져서다. 결국 전교조를 교단에서 내쫓아야 한다.'
교사 조롱이 온 국민의 '레저 스포츠'가 된 건 이미 오래다. 전국 수십만 교사를 한통속이라고 몰아세우는 게 좀 심하다고 여겼는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교사 갈라치기에 나섰다. 전교조 교사와 전교조 아닌 교사. 모르는 이가 포털을 본다면, 전교조를 '악마 집단'으로 여기게 될 듯하다.
'기-승-전-전교조 퇴출'로 귀결되는 단순한 논리에 토론은커녕 상식적 질문조차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예컨대, 교육 전문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경쟁의 효율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기준이 타당한지 토론하자는 제안에, 왜 경쟁을 거부하느냐며 동문서답하는 꼴이다.
목적지와 코스도 모르는 채 내달리는 경쟁이라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말 그대로, 경쟁을 위한 경쟁일 뿐이다. 대입을 향한 무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그러하듯, 전국 수십만 교사들을 기성 질서에 순치시키기 위한 '큰 그림'인지도 모른다.
총대를 멘 전교조가 도드라져 보일 뿐 차등 성과급제에 호의적인 교사는 단언컨대, 없다. 능력이 있고 자질이 우수한 교사가 우대받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는 교육부의 지적에, 과연 교사의 능력과 자질을 무엇으로 평가하느냐며 되레 반문한다. 교육부의 명쾌한 답변은 아직 없다.
기피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에 대한 보상 차원이라는 부연 설명에도 모두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힘든 업무가 있다면, 동료 교사들끼리 짐을 나누는 게 우선이라고 반박한다. 그게 어렵다면, 학급 담임과 행정 업무의 순환 보직 등의 방식으로 분담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월급에 웃돈을 얹어주면 수업이든 잡무든 더 열심히 하게 될 것이라는 천박한 발상에 발끈한다. 교사가 돈에 얽매이게 되면 교육의 본령이 뒷전일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교육공무원법에서 교사의 영리 행위와 겸직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도 그래서다.
"학생이 돈으로 보인다"는 고백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박봉이었던 교사의 급여를 중견 기업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 역시 돈에 구애받지 않고 교육에만 힘써달라는 주문이었다. 교사의 자존감이 돈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이는 돈과 교육이 함께 갈 수 없다는 당찬 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차등 성과급제가 전격 도입되면서 학교는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의 광풍을 학교 교육도 피해갈 순 없었던 것이다. 차등 성과급제 반대 투쟁은 돈으로 교사를 길들이려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맞선 저항이었다.
돈에 길들어진 학교와 교사는 '파블로프의 개'로 전락하고 만다. 생존을 위해 교육부의 지원 사업에 목매단 대학들이 반면교사다. 돈 앞에 대학의 건학이념도 교육과정도 무기력하기만 하다. 대학은 지식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 수를 채워야 생존할 수 있는 시장판이 됐다.
지방대에 근무하는 지인은 '학생이 돈으로 보인다'고 고백했다. 정원을 채워야 자리가 보전되고, 강의평가로 급여가 결정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고 했다. '영업사원'으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이 차등 성과급제가 뿌리내린 초중고 교사들의 미래라고 장담했다.
교사에게 '돈 줄 테니 분발하라'고 종용하는 건, 아이들에게 모든 교육적 가치가 돈으로 환원된다는 걸 일러주는 꼴이다. 교사의 양심과 철학, 열정과 의지 등이 돈으로 계량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교사별 등급이 매겨지는 순간, 학교 교육은 황폐화한다.
진정 우리 교육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교사의 선하고 자발적인 의지를 북돋울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돈을 미끼로 획일적으로 줄 세우는 방식으로는 백약이 무효다. 지난 20년 동안 차등 성과급제가 교육력 제고는커녕 교육 주체 간 소통과 협력을 방해해왔다는 건 모든 교사가 동의하는 바다.
일례로, 난 담임으로 배정되면 반 아이들과 함께 방학을 이용해 지리산 종주 등반을 해오고 있다. 지금껏 열세 차례 다녀왔고, 그 교육적 효과는 경험한 아이들의 입을 통해 검증됐다. 이따금 졸업생들이 찾아오면, 이구동성 학창 시절 가장 뜻깊고 보람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계획부터 시행까지 '장애물'이 한둘 아니다. 학부모 동의서와 보험 가입은 기본이고, 대피소 예약과 사전 훈련에다 동반 교사 섭외, 학교장 결재까지 출발하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 그중 가장 힘든 건,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하느냐'는 우려를 설득하는 일이다.
혹여 사고가 나면 홀로 덤터기를 써야 한다. 당장 안전교육 여부부터 시작해 책임을 묻기 위한 꼬투리를 잡으려고 '탈탈 털' 게 된다. 교육부나 교육청, 심지어 학교조차도 방어막이 돼주지 못한다. 가장 '안전한' 교육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통용되는 이유다.
온갖 번거로움과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들과 며칠간 지리산에 드는 건, 경험상 그만한 교육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교사더러 성과급을 더 줄 테니 하라면 하겠는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때마다 나의 교원평가 결과는 B등급이었다. 꼴찌였다는 뜻이다.
돈으로 교육을 사지 말라
교육부는 돈으로 교육을 희화화시키지 말라. 부디 열정을 지닌 교사들이 다양한 교육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주는 일에 힘써주길 바란다. 내내 복지부동하다가 돈 몇 푼에 자극을 받아 움직이는 교사라면, 그는 학교 현장에 남아있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교육부가 포털의 기사에 달린 치졸한 댓글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면, 만시지탄이지만 차등 성과급제를 철회하는 게 옳다. 여론의 지지를 핑계 삼는 건 무책임하다. 다수가 차등 성과급제에 찬성하는 건, 교사 집단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 것일 뿐 그것의 효과를 신뢰해서가 아니다.
사족 하나. 최근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은 "교원 평가제를 실효성 있게 운영해 부적격 교사를 퇴출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주장에 여론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교사 집단을 욕할수록 여론의 지지를 받는 건 우리 사회의 공식이다.
교사 집단 내부에서도 부적격 교사를 걸러내자는 주장에는 모두가 찬성한다. 다만, 그의 주장이 어설퍼 보이는 건, 교원 평가제의 실효성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서다. 차등 성과급제로 교육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교육부의 주장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사족 둘. 올해 성과급을 균등 분배한 학교와 교사가 3427개 교의 7만 6632명이라고 한다. 비율로 치면, 15% 정도다. 대다수 학교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차등 분배해오고 있다는 뜻이다. 도입된 지 20년도 더 지났으니, 정책 효과에 대한 교육부 나름의 평가가 갈무리돼 있을 테다.
그걸 테이블에 올려놓고 찬반 토론을 벌여보자. 차등 분배한 학교가 균등 분배한 학교보다 교사의 교육 전문성이 높아졌다는 게 확인되면, 전교조의 반대도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만약 자료가 없다면, 교육부의 직무 유기이거나 애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책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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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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