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만든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깻잎김치, 파김치..이사로 지친 나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박미연
그도 나의 가사노동에 대해 고마워할까
여기서 잠깐 의문이 든다. 내가 그의 가사노동에 감탄하는 만큼, 그도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가. 그가 요리를 하면 대단한 것이 되고, 내가 요리를 하면 당연한 것이 되는 이 요상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내 가뭄>의 저자 애너벨 크랩은 사회 문화적으로 남성의 가사 무능력은 권장 사항이지만, 여성의 가사 무능력은 혐오 대상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는 가사 노동이 면제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부엌에서 요리하지 않아도 특별히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엄마, 형수, 아내, 누나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드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를 살아왔다.
애너벨 크랩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동안 그의 가사 무능력은 사회문화적으로 이미 허용된 것이요, 기대된 것이요, 권장된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나는 가사노동에 젬병이 아닌 그를 보고 매번 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여자들의 가사 무능력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가사가 여자들의 일로 규정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성이 본능적으로 가사 노동에 적합한 것처럼 회자된다. 그러니 칭찬과 감사는 여성의 집안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가사 노동에 대해 성별에 따라 들이대는 잣대가 이렇게 다르다. 잣대가 다르니 똑같은 노동을 해도 보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요리를 하면 할수록 칭찬을 받으며 자존감이 높아지는데, 그녀는 요리를 하면 할수록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어 자존감이 떨어진다. 이럴 바에야 그가 요리하는 쪽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그는 점점 더 대단해지고, 그녀는 요리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옆지기가 다음 주말에는 배추 김치를 담가보겠단다. 지난번에 그가 만든 배추 김치는 절여지지 않아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이것이 과연 김치가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짜지 않고 맛있었다. 배추도 그의 편이다. 그가 배추김치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이렇게 차고도 넘친다. 벌써부터 그의 배추김치를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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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의 놀라운 김장 솜씨, 불현듯 든 의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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