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개 여성시민사회단체 소속 회원들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 사회를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1.5.26
유성호
기독교는 종교적 믿음 내세우지만
동성결혼이 합법이 된 미국에서나 차별금지법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한국에서나 종교적 신념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앞서 미국의 사례에서 나온 제빵사의 경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커플을 위한 케이크 제작을 거부했다고 해서 차별금지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됐습니다. 얼핏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을 처벌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념이라고 예외로 두면 그 법은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종교적 신념과 성적지향 차별 금지 원칙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을까요? 무성한 말들을 다 걷어내면 결국 사회는 둘 중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경향신문>에 "누구나 지금의 일상에서 밀려날 수 있고, 당장은 '차별받는 이'와 자신이 멀어보이더라도 어느 순간 강제적으로 그런 상황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시위하는 학생들을 보며 "부모가 뼈빠지게 일해 공부시켰더니 데모나 한다"라며 손가락질을 하던 어느 시장 상인이 대형마트가 들어선다고 하자 시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말처럼 누구나 약자가, 소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법은 나를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독일의 루터교 목사이자 반나치 운동가 마르틴 니묄러(Martin Niemöller)는 그 유명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를 썼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다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톨릭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 입구의 양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문구가 새겨 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하는 말로 지금은 내가 묘지에 누워있지만 다음은 당신 차례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 겸손하라는 묵직한 의미이지만 한편으로는 수시로 바뀌는 개인의 처지에도 해당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외를 적용해서 차별금지 원칙을 허물려고 하거나 아예 원칙조차 제정하지 못하게 하는 일부 종교계가 생각해 봤으면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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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 보세요... 오늘은 나지만 내일은 당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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