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선거기간동안 임시현수막을 단 선거사무실 앞 최지선 후보
최지선
"출마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여성으로서 지선님의 출마가 힘이 됐어요."
선거가 끝나고 '낙선 인사' 중에 유권자에게 들은 말이다. 내 출마가 누군가에게 힘이 됐다니, 기분은 좋았지만 조금 의아했다. 나는 당선되지 못했는데, '출마' 자체가 힘이 됐다니?
몇 주 후에 또 다른 얘기를 듣고서야 의문이 해소됐다. "이런 얘기 조금 진부하지만, 30대 여성이 정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어요." 스포츠로 치자면, 국제대회에서 출전권도 따내지 못하고 만년 탈락하던 비인기 종목의 국가대표팀이 우여곡절 끝에 국제대회 출전권을 따내고, 메달은 못 땄을지라도 경기를 성실히 치르는 것을 봤을 때.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느껴지는 마음과 비슷하겠구나.
'나와 닮은 후보'는 왜 보기 힘들까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송파구의원 선거)에서 나는 만 31살 여성에 소수정당 후보였다. '아이들과 청소년이 행복한 잠실'을 만들고 싶다며 '비주류'인 환경 공약을 들고나왔다. 평균 재산 수십억 원에 평균 나이 50대 남성, 또 2개 정당 출신이 90%를 차지하는 국회를 봐도, '30대 여성 소수정당 후보자'라는 정체성만이라도 어느정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평소에 '내 모습과 닮은' 당선자는 둘째치고, 후보조차 잘 접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돈'님이 될 수 있겠다.
내가 출마할 때 가장 큰 장벽이 됐던 건 단연코 돈이었다. 기초의원 후보 등록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야 하는 기탁금만 해도 200만 원에, 공보물과 벽보 인쇄비, 사무실 임차료, 선거운동비용 등 대략 계산해봐도 1000만 원은 훌쩍 넘어가는 비용인데, 내 통장에는 그 돈이 없었다. 득표율 15%가 넘는 후보에겐 '선거비용'을 세금으로 돌려주는 '선거비용 보전제도'가 존재하지만, 나같은 소수정당 후보는 15% 득표를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돈 문제'는 거대정당의 청년 후보자도 피해갈 수 없는데, 사후에 선거비용을 돌려받게 되더라도 선거기간 동안 사용할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초의원이라도 선거에 한 번 나오면 수천만 원은 쓰게 되는데, 이는 경제활동 기간이 짧은 청년들이 부담하기엔 너무 큰 돈이다. 후보등록 기탁금 200만 원만 해도 최저임금 한 달 월급을 초과한다.
이에 대해 인상 깊었던 사례가 있는데, 2018년 전주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서난이 현 전주시의원이다. 그는 출마 당시 선거자금 4000만 원을 펀드 형식으로 모금해 선거 후 0.3%의 이율을 보태서 투자자들에게 반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이는 15% 득표가 거의 확실시되는 거대정당 후보여서 가능한 방식이었지만, 기초의원 선거자금을 펀드형식으로 해소한 기지가 돋보였다.
다행히 지난해 선거법이 개정돼 올해부터는 기초의원 후보자도 후원회를 만들 수 있게 됐고, 나는 후원금을 모아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기탁금 200만 원을 포함해 약 1500만 원이 들었는데, 이것도 수많은 선거운동원 분들이 무보수로 자원봉사 해주시고, 갑작스레 정해진 보궐선거라 예비후보 기간 90일을 다 채우지 못한 덕분에 가능한 예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