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압구정마을
월간 옥이네
압구정(狎鷗亭).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빽빽한, 번화한 도시가 떠오르는 지명이다. 그러나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글자를 들여다보면, 그 뜻은 전혀 다르다.
압구정의 본래 의미는 '갈매기를 벗 삼아 지내는 정자'다. 조선시대 한명회가 직접 짓고 사랑한 정자의 이름이자, 자신의 호로 쓰기도 했던 '압구정'. 수많은 선비가 이곳을 출입하며 지은 시만 수백 편이다. 그때의 '압구정'은 도시화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지만, 그때의 지명만은 남아있다.
사라진 압구정은 서울에만 있지 않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1리, 이곳에 또 하나의 '압구정'이 있다.
압구정 마을 이름의 유래
금암1리의 본래 이름은 '압구정 마을'. 마을로 향하는 길 입구에 자리 잡은 커다란 비석에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한시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평생 살아온 오교탁(79) 씨가 직접 지은 한시다.
용두산하 압구정 龍頭山下 鴨鷗亭
정무흔적 전설유 亭無痕迹 傳說遺
금강청수 불변류 錦江淸水 不變流
전야고금 비조락 前野古今 飛鳥樂
용두산 아래 압구정 정자
정자는 없어지고 전설만 남았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금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앞길에는 새가 노니는구나
전설부(傳說賦) - 오교탁(吳敎鐸)
"정확한 때는 모르지만, 고려시대라고 추정을 하는 게지. 그때 여기에 '압구정' 정자가 있었다는 거여. 오리가 놀고 갈매기가 난다는 뜻이지. 뜻이 얼마나 아름다워. 그러다 150년 전쯤, 대수가 났다지. 그 홍수가 어찌나 엄청났던지, 정자가 그만 휩쓸려 사라졌다는 거야." (오교탁씨)
압구정동이 그랬듯, 이곳 압구정 마을에도 '압구정'이 있었다. 오교탁씨가 가리킨, 압구정 터는 이제 나무가 무성하고 앞에는 도로가 생겼다. 그 옛날의 풍경과는 다르겠지만 그의 한시 그대로, 건너편에는 금강이 도도히 흐르고 그 위로는 새가 난다. 압구정 터 가까이에는 이제 카페 겸 펜션 '밀'이 자리 잡았다. 변함없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마치 사라진 압구정의 명맥을 잇는 듯하다.
서울 압구정동과 압구정 마을, 그 지명의 유래가 이렇게 비슷하다 보니 1994년, 한때 마을에서는 '압구정동과 자매결연을 맺자'는 목소리가 나온 적도 있다.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운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