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천 계곡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서중천 계곡을 이루며 한남리 마을 사이를 지난다.
황의봉
2코스 소롱콧길은 1코스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출발해 서중천 일대에 형성된 울창한 숲길을 걷는다. 초입부터 경사가 나지막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걷기에 힘들지는 않을 정도여서 상쾌하게 숲을 즐기면서 걸었다. 이 숲에는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조롱나무 산딸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나무 이름을 알아가며 걷다 보면 심심치 않다.
이번에는 참꽃나무 군락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육지에서는 진달래꽃을 먹는다지만 제주 사람들은 참꽃나무꽃을 먹는다고 하는 그 나무였다. 참꽃나무는 진달래과에 속하는데 개화기가 5월이다. 붉은꽃이 진달래를 닮았지만 키가 훨씬 크다. 내년 봄에 다시 오면 이곳 군락지의 풍경이 얼마나 화려할까.
계속해서 숲속에 난 길로 걷다가 잠깐 1코스 걸을 때 못 봤던 머체왓 옛집터에 들렀다. '머체골 집터 이야기'라는 안내판을 보니 내력이 적혀 있다. 예전에 목축업을 하던 문씨 김씨 송씨 등이 마을을 이루고 살다가 4·3 당시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끝내 복귀하지 못하고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주4·3 때 불타 없어진 마을의 흔적을 보여주는 게 대나무밭이라고 한다. 그런데 머체골 집터에는 대나무와 함께 양하가 많이 보였다. 봄이면 양하 줄기를 먹고, 여름에는 잎으로 쌈을 싸 먹고, 가을에는 꽃대를 나물로 먹을 수 있어 초가집 둘레에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돌무더기만 남은 집의 구조를 설명해주는 팻말들이 보이기에 자세히 살펴봤다. 안거리(안채) 밖거리(바깥채), 우영팟(텃밭), 올레 등이 보였다. 이 옛 집터에서 가장 흥미를 끈 건 다름 아닌 돗통(돼지우리) 혹은 통시(변소), 돗통시라고도 하는 '돼지우리 겸 변소'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아마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돗통시를 볼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사람이 방출하는 변을 밑에서 돼지들이 먹었다는, 전설적인 제주도 변소의 구조를 이 숲길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나지막한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소롱콧길은 자연림 숲을 지나 1960년대 제주도 산림녹화사업으로 조림한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소롱콧길의 반환점에 해당하는 편백숲에 이르니 치유의 숲으로 명명하고 벤치와 평상을 설치해 놓았다. 잠시 평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니 절로 심신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멋진 힐링 공간
편백숲을 돌아 내려오다 보면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중천을 지구 밖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하다고 묘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굳어져 생긴 기묘한 모양의 바위덩어리가 도처에 산재한 계곡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듯하다. 한라산 흙붉은오름에서 시작해 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 서중천은 100㎜ 이상의 비가 내려야 물이 흐르는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1코스와 겹치는 구간이다. 서중천에 바짝 붙어 내려가는 길이다.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쳐 놓은 줄도 보인다. 그만큼 계곡이 제법 깊다. 이 서중천 계곡의 물은 저 아래 한남리의 마을 사이로 지나간다고 한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완만한 내리막길인 데다가 계곡 풍경을 내려다보며 걸으니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
계곡 길 중간에 '올리튼물'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오리가 뜬 물, 즉 커다란 물웅덩이에 오리가 둥둥 떠 있다는 뜻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오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엔 특히 겨울 철새인 원앙이 큰 웅덩이에서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어느새 머체왓 주차장이 보인다. 오늘도 1코스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었다. 굳이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면 걸을 때 바닥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땅속에 흙보다 돌이 많아 나무뿌리들이 땅바닥으로 나와 어지럽게 뻗어 있어서 걸려 넘어질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