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냐 묻는 쪽지가 왔다.
남희한
그러던 얼마 전, 편집기자가 쪽지를 보내왔다. 잘 지내느냔 안부와 함께 혹시 슬럼프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쪽지에는 요즘 송고되는 글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었고, 분명 슬럼프라 그럴 것이라는 희망 어린 짐작도 자리하고 있었다.
감사함과 송구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량이 늘다가 정체 하고 있는 거라면 모를까, 그냥 '오늘도' 잘 쓰지 못하고 이번 송고 글도 부족했을 뿐인 나로선, 이럴 리 없을 거라는 믿음 어린 문장들이 고마우면서도 양심을 푹 찌르고 마는 탓이다.
슬럼프라... 어디 보자. 365일 중 300일은 잘 쓰지 못하니 외부의 시각으론 슬럼프로 보일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본인은 슬럼프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글쓰기의 실력, 그러니까 필력이란 것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나로서는 '아직 부족하구나', '잘 좀 썼으면 좋겠다' 같은 간절한 소망만 있을 뿐, '요즘은 글이 잘 안 써지네' 하는 자못 자만스러운 생각은 잘 들지 않아서다.
그러다 보니, 그런 내게 슬럼프냐고 물어봐주는 편집기자의 쪽지에 감사와 부끄러운 마음이 들다가 스스로에게 화가 좀 났다. 그간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했던 것과는 무관하게, 어찌 되었든 이전보다 못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들어 괜스레 조심스러워진 나의 글쓰기 행태가 조금 못마땅했더랬다. 운 좋게 통했던 몇 꼭지의 글을 짓곤 마치 언제나 통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란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 욕심이었다. 그런 운이 계속될 수 없었던 나의 글쓰기는 점점 메말라갔고 결국 이렇게 들통이 나고 말았구나 생각했다.
쪽지를 받곤, 부여잡고 있던 키보드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며칠간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아무 글도 읽지 않았다. 때마침 단양에 장모님을 뵈러 간 덕에 먹고 자고 노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가져갔던 책과 아이패드는 다시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가방 속에 그대로 있었다.
슬럼프에 대한 '나 좋을 대로' 해석
시간은 금이라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은 제법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내 모습을 나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됐고, 욕심으로 힘이 잔뜩 들어차 있던 어깨에 힘이 좀 빠졌다. 그러다 보니 슬럼프로 보인다는 편집기자의 말에 들었던 생각, 가볍게 치부해 버렸던 그 생각에 무게를 실을 수 있었다.
"가만 있어보자, 어쨌든 이전까진 잘 해왔다는 거잖아..."
내 삶을 지탱해 온, 나 좋을 대로 생각하는 합리화가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다시 읽기 시작한 책 속 한 문장이 애써 편안함으로 방향을 돌린 내 마음의 등을 슬며시 떠밀어 줬다.
"인생이 실망적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건 사실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랬다. 조던 피터슨의 말처럼, 실망이란 것은 사실 놀라운 게 아니었다. 실제로 실망은 삶의 크나큰 한 부분이었다. 나도 몰랐던 내 상태를 알아차린 편집기자의 말마따나 나는 슬럼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게 슬럼프라면, 슬럼프가 이전 만하지 못하다는 뜻이라면, 슬럼프는 그저 일상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