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예쁜 옷을 입고 주무신다고 했다.
남희한
누나네 아이들도 어느새 크고 조금씩 수월해지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딸과 며느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대상포진이 재발한 딸과 빈맥 증상이 생긴 며느리는 어머니에게 1+1의 걱정을 더해 드렸고, 그 덕에 어머니는 보호자를 동반해야 하는 연세에도 보호자로서 병원을 다니고 있다. 그러다 무슨 얘기 중에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잘라고 눕다가... 잠옷이랑 속옷까지 갈아입었다 아이가. 그냥 죽으면 끝이지 싶다가도, 그래도 예쁘게 보여야지 싶어서...."
이 집 저 집 일로 몸이 너무 아팠던 밤, '낡은 옷 입고 죽으면 안돼 보일까 봐, 예쁜 옷 입고 잤다'는 어머니. 그리고 이후로 쭉 신경 쓰고 있노라 어머니는 담담히 말했다. 아, 어머니.
걱정이 많은 분인 줄만 알았지 걱정 뒤엔 언제나 대비를 하고 계셨다는 것을 보면서도 생각지 못했다. 어머니의 걱정들은 알 수 없는 인생을 위한, 일종의 대비 목록인 셈이었다. 걱정을 걱정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뭐라도 해보려 애쓰는 모습이 이제는 전전긍긍이 아니라 초연해 보였다.
비록 그 초연함이 갈팡질팡하고 분주해 보이지만, 그 불필요한 듯한 부지런한 모습을 이전보다 편안하게 바라볼 수도 있게 됐다. 겁 많은 어린애 같은 줄 알았던 어머니는 노련한 어른이었고 걱정을 안 할 수 있다 장담했던 나는 어머니를 걱정'만' 시키는 미숙한 어린애였다.
66세에 죽는다는 점쟁이의 예언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살아 있네!' 하고 다행스러워한다는 어머니. 67세의 어머니는 '살아 있어 다행인' 오늘도 온갖 걱정을 다 하고 계신다. 걱정 좀 적당히 하시라 말뿐인 당부를 하고 있지만, 이제는 부디 그 걱정이 오래오래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그 점쟁이가 66세를 넘기면 오래 산다고 했다는데, 그 엉터리 점쟁이의 빠져나갈 구멍이 훗날 아주 용한 점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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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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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 어머니가 예쁜 잠옷을 입고 주무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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