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3일 진행한 소녀상 철거 반대 기자회견
Koreaverband
이날 기자회견 후 소녀상 앞에는 기자들을 비롯, 300여 명의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회견이 끝난 뒤 우리는 다 함께 주택가를 지나 구청까지 소란스럽게 가두행진을 했다.
닷새 만에 1만2000명이 서명한 성명서를 구청장에게 전달하겠노라고 그 전날 비서에게 통보해놨지만, 구청장이 직접 내려와 우릴 기다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시민들이 구청장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집회는 해산됐다. 나중에 한 기자에게 들은 바로는, 구청장은 그날 우리가 보여준 엄청난 파급력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구청장과 만나다
구청장은 일본 측과 함께 소녀상 관련 합의를 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2주 뒤 구청장과 KV팀은 각각 변호사를 대동하고 소녀상 비문을 수정하기 위해 만났다. 일본 정부처럼 구청장이 비문에 쓰인 "성노예"란 단어에 대해 문제제기 했을 때, 2007년 유럽의회에서 통과된 결의안에 이미 "성노예"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을 보여주자 그는 난감해 했다(유럽의회 결의안은 27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뜻밖의 순간에 효력을 발휘한 결의안이 새삼 뿌듯했다).
구청장은 서슬이 시퍼런 한정화 대표에게 잘 보이고 싶었는지 대화 사이사이에 '소녀상 관련 항의메일이 전 세계에서 빗발치고 있는데 곧 북극에서도 메일이 올 것 같다', 심지어 'KV가 트럼프 선거캠프에서 활약해주면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게 이길 것'이라는 등 썰렁한 독일식 농담을 날렸다.
관련해 구청장은 새로운 비문 내용을 몇 차례 수정해서 일본 정부에 제안했지만, 일본 측은 수정된 비문에 대해서는 아랑곳 않고 집요하게 소녀상만 치워달라고 하는 등 구청장도 일본대사관에 실망했다는 소문 또한 있었다.
10월부터 11월 사이에만 열 차례가 넘는 작은 음악회와 집회가 열렸다. 동포들이 조직한 소녀상 앞 음악회에는 단골 청중이 생기기도 했다.
소녀상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애착도 컸다. 하루는 이른 아침에 전화가 걸려 왔다. 소녀상 앞에 큰 트럭이 섰는데 소녀상을 싣고 갈 모양이니 빨리 와보라는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갔더니 대형 트럭은 그냥 주차중일 뿐이었다. 기념비를 세우고 지키는 데는 지역주민이 가장 중요하다는 미테구 공무원의 말이 떠올랐다.
소녀상 철거 반대 안건으로 낸 지역 정당
소녀상 철거를 막아준 것은 행정법원 소송, 서명운동, 전 세계인들의 청원서, 시위, 그리고 주민들의 애틋한 정성이었지만, 실질적인 역할은 미테구 의회에 속한 정당들의 몫이었다. 철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수당인 3개 당이 각각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 도움을 주겠노라고 했다.
좌파당이 제일 먼저 달려왔다. 소수당인 본인들이 앞서면 다른 당이 반대할 수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 후 사민당이 소녀상 철거 반대 성명서를 먼저 냈고, 다음으로 구청장이 소속된 녹색당이 내자, 좌파당도 그 즉시 홈페이지를 통해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구의회는 정부 차원의 국회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의회의 결의안 채택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해(2020년) 11월 5일 열린 지역의회에서, 해적당이 낸 소녀상 안건이 찬성 27표 반대 9표로 가결됐다. 예정대로 1년간 그 자리에 존치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역시 이날 제출된 좌파당과 녹색당의 '소녀상 영구존치 결의안'은 시간 관계상 다뤄지지 못해 한 달 뒤인 12월 1일로 미뤄졌다. 이 한 달간 독일 언론에서는 소녀상 관련 기사, 전시 및 일상적 여성 성폭력 문제를 주제로 한 기사들이 쏟아졌고 이는 독일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