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는 인종, 장애인, 성, 나이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의 사례가 나와 있었다.
진혜련
한 아이가 물꼬를 트자 여기저기서 "맞아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이들의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질문을 이어갔다.
"어린이 차별? 너희들 차별 당한 적 있어? 노키즈존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요. 그것 말고도 많아요."
아이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무례함을 겪었던 자신의 경험을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존중받지 못했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끄집어냈다.
"친구랑 둘이 문구점에 갔는데요. 아주머니께서 문 닫을 시간 다 됐다고 빨리 고르라고 짜증내면서 말하셨어요. 가게에는 우리 말고 다른 어른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한테는 아무 말 안 하고요. 우리한테만 그랬어요."
"편의점에 엄마랑 같이 갔을 때 물건을 잘못 건드린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아무 말씀 안 하셨는데 제가 친구랑 가서 물건을 살짝 떨어뜨렸을 때는 화를 내면서 혼내셨어요."
"경비 아저씨요. 어른들한테는 친절하게 대답해주면서 우리가 물어보면 귀찮아 하면서 말해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아저씨와 개가 있었거든요. 제가 개를 무서워해서 뒤로 물러서니 아저씨가 그때서야 개를 안으면서 '너... 겁쟁이구나'라고 말하셨어요."
내가 몰랐던 아이들의 세계였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는 무척 화가 났다. 나는 당연히 어른들이 같은 성인을 대할 때보다 아이들을 대할 때 좀 더 친절하고 선의를 베풀어 줄 거라 생각했다(그럴 거라 믿고 싶었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절대적인 사회적 약자니까 말이다.
내가 아이들이 해준 말에 유난히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혼자 동네 마트에 가서 두부 사오는 심부름을 하고, 조금 늦은 저녁 시간에 혼자 학원을 다녀오는 생활을 한다. 주말에는 혼자 외출하여 친구들과 두세 시간씩 축구를 하고 돌아온다.
항상 엄마 손을 꼭 잡고 같이 다녔던 아이였는데 어느덧 커서 이제는 엄마, 아빠가 동반하지 않는 아이의 사생활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도움과 보호 없이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것에 성취감과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나는 선뜻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혼자 심부름 가는 아이를 베란다 창문으로 한참 내려다보고, 예정된 시간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걱정이 되어 아이를 찾아 집을 나선다.
그런데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혼자 다닐 때 꽤나 불친절하고 무례한 어른들이 많다고 말하는 거다. 쉽게 대항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약점을 이용해 교묘하게 함부로 대하는 어른들이 있었다(물론 그렇지 않은 어른들이 훨씬 많을 거라고 믿고 싶다!). 차별 받는다고 느낀 상황에 놓였을 때 아이들이 느꼈을 불안감과 억울함이 상상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몹시 미안해졌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몰랐어. 너희들 정말 화나고 억울하겠다. 어른들이 잘못했네. 선생님이 대신 사과할게."
그랬더니 아이들은 금세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아파트 장터 과일 가게 아저씨는 제가 혼자 갔을 때도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덤으로 귤도 몇 개씩 챙겨 주세요."
"맞아요. 그런 어른들도 있어요."
약자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 진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