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크게 이슈화 시켰던 버스점거투쟁.
다큐인
나는 그 때까지 한 번도 장애이해교육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당시 우리는 모두 내 짝꿍이 '3층 빌라에서 거꾸로 떨어졌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을 한 치의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장난과 차별, 혐오를 넘나드는 학급 친구들의 여러 표현과 행위들을 선생님이 제재하는 걸 본 적도 없었다.
30여 년 전만 해도 학교에는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었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높은 층에 위치한 교실을 이용해야 했기에, 친구의 엄마는 그를 업어서 등하교시켰다. 외출하지 못하는 친구를 찾아가 노는 내게 친구 엄마는 "주희는 속이 깊다"며 칭찬하셨다. 우리는 초등학교까지는 함께 다녔지만, 중학교부터는 따로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이동에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지역에 있는 중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나보다 체구가 컸고, 점점 나이 드는 친구 엄마가 언제까지나 엘리베이터를 대신해 친구의 등하교를 도울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도권 외곽에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학교가 너무 멀었지만 가끔씩 찾아갔고, 나는 친구를 만난 김에 청소 같은 봉사활동도 했다.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 모의고사를 본 이후 멀어졌는데, 이유는 친구가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넓은 나를 원망했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 하고 꿈이 많았던 친구의 속도 모르고 나는 그의 앞에서 나의 입시 계획을 이야기했고, 친구의 얼굴에는 그늘이 졌다. 그러나 당시에는 바쁜 입시 중에도 일부러 찾아간 나를 친구가 밀어냈다는 생각에 몹시 마음이 상했던 터다. 그러다 뒤늦게 대학 입학 후 친구의 사과 메일을 받고도 답장을 하지 않았고, 당시의 어린 우정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 상처로 남아 있다.
가끔씩 내 절친과 짝꿍을 생각한다. 친구가 지금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닐 수 있었다면 친구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멋내는 걸 좋아하던 친구가 예쁘게 꾸미고, 나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늦지 않게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을까? 지적장애를 이유로 온갖 놀림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던 내 짝꿍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짝꿍이 나이 들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이웃들과 함께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과 여전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