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픽사베이
지난한 삶에서 나를 꺼내준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회사였다. 남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붙잡혀 있는 회사가 족쇄 같을지 모르겠지만, 혼자 남은 시간들을 어찌할 줄 모르던 내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몇 안 되는 끈이었다.
내 존재의 가치를 즉각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있어 다행이었고, 출근해서 따뜻한 동료들과 눈 맞추는 순간들이 나를 버티게 했다. 내일 앉을 자리가 있어서 오늘을 견뎌냈다.
다른 하나는 애플워치였다. 애플워치는 매일 바닥을 기고 있던 내게 친구 토란이 다가와 "같이 운동하자"며 손목에 채워준 물건이었다. 늘 함께 있지는 못해도 시계 하나로 연결된 친구들과 서로 응원을 주고받는 그 시간들이 나를 몇 걸음이라도 걷게 했다.
친구들에게 무기력한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나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움직였다. 덕분에 고양이와 반려인 병간호를 동시에 하느라 완전히 손 놓았던 운동을 조금이나마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축구였다. 평일에는 할 일들이 있으니 어찌 저찌 견뎌내는데, 주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주말은 온통 당신과 함께였는데 말이다.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주말마다 나는 가자미처럼 납작 엎드려 암흑 속으로 침잠해버렸다.
타인과 나를 연결시키는 축구
그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친구 R이 나를 끌어내기 위해 말을 걸었다. "저 오늘 축구 일일클래스 참여할 건데 같이 갈래요?" 첫 체험은 무료라는 말도 덧붙였다. 장소는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거리인 강서구였고, 한 시간 뒤에 수업이 시작한다고 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친구의 손에 이끌려 한 축구교실 클래스에 참여했다. 처음으로 만져본 공이었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도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머릿속을 그렇게 깨끗하게 비운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두 시간만큼은 나는 '사별자 가족'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혼자 살아가야 할 나날들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