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민주지산에서 천리행군을 하던 특전사 군인 6명이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2021년 6월 10일 물한리계곡에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를 세웠다.
영동군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없던 산도 만들 수 있다'는 최강의 특전사 군인들이 줄줄이 산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1998년 4월 1일 충북 영동에서 거짓말 같은 대형 훈련사고가 발생했다. 해발 1242m의 민주지산 정상부근에서 천리행군을 하던 제5공수(흑룡부대) 부대원 6명이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이들은 학군 30기인 김광석 대위, 이수봉 중사, 오수남 하사, 이광암 하사, 한오환 하사, 전해경 하사다. 순직한 특전사대원 6명의 합동영결식은 같은 해 4월 3일 특수전사령부장으로 거행됐고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전원 1계급 특진됐다. 사고 현장 아래 물한리 계곡에는 안타깝게 숨져간 젊은 군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있다.
충남대학교 ROTC 과정을 거치고 임관한 흑룡부대 중대장 김광석 대위는 29세로 전역을 불과 2개월 앞두고 있었다. 1995년 결혼해 세 살 난 딸 하나가 있었다. 신혼여행을 가지 못해 전역하면 제주도로 뒤늦게 신혼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날 밤 행렬 뒤에서 낙오자 3명을 인솔하며 이동 중 탈진한 부대원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바람에 산속에서 함께 숨졌다. 김 대위는 1992년 이후 특전사에서 근무했고 각종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의협심 강한 지휘관이었다.
사고는 충남 청양 칠갑산을 출발해 계룡산과 속리산을 거쳐 대마산에 이르는 9박 10일간의 대대 전술종합훈련에 나선 특전부대원들이 민주지산을 넘을 때 일어났다. 당시 민주지산 일대에는 30㎝ 가량의 폭설이 내린 상태에서 초속 40m에 달하는 강풍으로 체감온도가 영하 20℃ 밑으로 급강하하는 등 악천후 상태였다.
출발 당시부터 기상 상태는 악조건이었다. 하루종일 비가 쏟아졌으며 이로 인해 대원들의 체력이 급격히 소모되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강추위와 폭설이 몰아닥쳐 탈진하는 장병들이 늘어났고, 기상악화로 헬리콥터조차 뜰 수 없어 구조작업이 늦어지면서 결국 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조사결과 일부 대원들의 경우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겨울철 내의와 우의 등을 지참하지 않은 채 행군을 강행하는 등 준비가 소홀했으며 스키 파카의 방수 상태도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으나 행군을 주파하려는 지휘관과 대원들의 강한 의욕이 앞서 부대통제와 환자 처리 등 현장 지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총상 등 외상환자 위주로 구급약품을 준비하는 바람에 탈진환자에 대한 응급조치가 미숙했던 것도 사망자가 늘어난 요인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