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쓴 영어 이야기입니다.
진혜련
그런데 저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변했습니다. 제가 옆에 앉혀 놓고 읽어주지 않는 이상 절대 혼자 영어책을 보는 법이 없던 아이가 스스로 영어책을 꺼내 들춰보더라고요. 아이가 변하기 시작한 건 영어라는 언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익숙해졌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하루에 영상을 두세 시간씩 2년 정도 보자 귀가 트이고 입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아이에게 짧은 글로 이루어진 다비드 칼리의 <작가>라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아이는 그 책을 너무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엄마에게 다시 읽어주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아이는 한글로 쓰여진 책을 영어로 바꿔 저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아이는 점점 영어가 재밌어지고, 호기심도 커진 듯했어요. 그런 단계에 이르자 아이는 영어책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아이에게 알파벳이나 파닉스를 따로 가르친 적이 없었지만 아이는 영어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는 <Leap Frog>라는 파닉스 DVD를 무척 좋아해 수없이 보았는데요. 이걸로 영어 철자와 발음의 원리를 모두 익힌 것 같아요. 먼저 스토리 중심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충분히 영어 노출을 한 후 파닉스 영상을 봤기에 흡수도 빠르고 효과적이었다고 봐요.
아이는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영어독서프로그램(리딩게이트)를 열심히 했어요. 컴퓨터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이는 독서 후 문제를 풀면 포인트를 획득하고 순위도 집계되는 형식의 독서프로그램을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재밌어했어요.
지금은 그때만큼의 흥미는 갖고 있지 않지만 입학 후부터 매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따로 어휘를 공부해본 적 없는 아이는 이 프로그램을 하며 어휘를 많이 외우게 되었고요. 이 프로그램에서 포인트를 많이 획득하기 위해 <Harry Potter> 시리즈 원서 읽기도 도전하게 되었어요.
아이는 영상과 연계된 영어책을 잘 보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전체적인 내용이나 인물의 특징 등이 파악이 된 상태라 다른 책보다 쉽게 몰입하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틴틴의 모험' DVD에 푹 빠져있는 아이에게 같은 시리즈의 책을 사주었는데요. 간만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한 자리에서 앉아 한참을 보더라고요. "재밌니?"라고 슬쩍 물었더니 아이는 흥분하며 답했습니다.
"이렇게 재밌는 부분이 DVD에서는 안 나왔어요. 책이 훨씬 재밌어요!"
혹시나 오해 하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아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펼치고, 책을 한 번 집어 들면 몇 시간씩 빠져 읽고, 이 책 저 책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밖에서 친구들이랑 노는 것과 책 보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신발 신는 아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