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이야기를 담아 그림책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진혜련
아이는 어릴 때 책을 읽어주면 가만히 앉아서 잘 듣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책 속 주인공 이름을 아이 이름으로 바꿔 읽어주거나, 책에 자기의 경험과 비슷한 내용이 나오면 귀를 쫑긋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좋아할 책을 도서관, 서점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아이가 주인공인 책, 아이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긴 책을.'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이 엄마는 재능이 있나 보네. 그림은 어떻게 그리고 글은 뭐라고 써? 난 못 해.'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서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붙잡고 싶다. 나는 프로 작가의 그림책처럼 예술적 가치와 완성도가 높은 그림책을 만들지 않았다. 내가 만든 그림책은 서툴고 엉성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백희나, 앤서니 브라운 등의 유명 작가 그림책보다 엄마표 그림책을 더 잘 봤다.
나는 그림책을 인터넷의 포토북 사이트를 활용해 만들었다. 책을 만들 때 종이 여러 장을 스테이플러로 툭툭 찍어 가볍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진짜 책과 크기, 모양, 질감 등이 최대한 비슷한 책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컴퓨터는 한글 프로그램만 다룰 줄 아는 나도 사이트 내의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제법 근사한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책에는 그림 대신 사진을 넣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엄마들이 육아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이 아마 사진 찍기가 아닐까? 핸드폰에는 다양한 표정과 포즈의 아이 사진이 가득했다. 나는 그 사진 중에서 글의 내용과 어울리거나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진을 골라 넣었다.
글을 쓸 때도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며 짜임새 있게 계획을 세우고 쓰지 않았다. 아이의 일상과 하루를 일기로 쓴다는 마음으로 썼다. 가능한 현재 아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어 아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자세하게 묘사하려 애썼다. 책의 독자는 내 아이이므로 아이가 좋아할 만한 단어나 표현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아이 눈높이에 맞춰 말하듯 썼다.
아이는 어릴 때 내 발가락을 유난히 좋아했다. 나는 아이에게 발가락 대신 말맛이 재밌는 '발꼬락'이라는 말을 주로 썼는데 아이는 '발꼬락' 말만 들어도 "까르르" 웃어댔다. 시도 때도 없이 내 발가락을 조물락 거리며 노는 아이 모습이 귀여워 첫 번째 그림책에 그 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