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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최대 고민 덜어준 놀라운 서비스, 그 이름 기억하시나요

예식 전성기와 함께 찾아온 옥천 '잔치방의 시대', 이제는 추억 속으로

등록 2022.10.28 19:19수정 2022.10.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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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진잔치방
영진잔치방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옥천읍 시내를 걷다 보면, 문득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빛바랜 '잔치방' 간판이다.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듯 문이 굳게 닫혀 있지만, 사람들이 여럿 오갔을 흔적이 남아있다. 잔치방, 잔치를 기획하는 공간이었을까? 생소한 이름에 호기심이 생긴다.

돌잔치, 결혼잔치, 환갑잔치... 아기가 태어나고 무럭무럭 자라, 자신의 길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끝내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사람이 거치는 특별한 기념일이다. 이런 때마다 으레 잔치가 있곤 했다.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의 발돋움을 응원하는 자리였으니, '한 사람이 잔치와 함께 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음식은 잔치가 열릴 때마다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잔치방은 다름 아닌, 그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옥천읍 소재 잔치방은 옥천잔치방, 일심잔치방, 영진잔치방, 화목잔치방, 한밭잔치방, 역전잔치방, 종가집잔치방으로 총 7곳. 1990년대 중반에 하나둘 세워지고 2010년대 들어 하나둘 문을 닫았다. 왜 이토록 많은 잔치방이 옥천읍에 갑작스레 생겨나고, 또 문을 닫게 됐을까. 그 비밀을 찾아 30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1989년 10월, 옥천읍에 상륙한 농협예식장


잔치방의 등장은 옥천읍 농협예식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옥천읍에 농협예식장이 생겨난 것은 1989년.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 별관으로 지하 1층-지상 1층의 농산물 판매장을 갖춘 농협타운이 설립되면서였다. 준공될 당시 1층은 신용 사업부 영업장, 2층 쇼핑센터, 3층 예식장 및 회의실, 4층 식당 및 소회의실, 농어민후계자 사무실 등으로 활용될 계획이었다.

"농협예식장 생기기 전이야 뭐, 극장이나 옥천문화원에서 결혼들 많이 했지. 나도 옥천문화원서 결혼했어. 옥천에 예식장이 생긴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야."

54년째 옥천읍에서 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김광성(79)씨의 말이다. 옥천읍 예식장은 농협예식장 외에도 제일·대원·궁전예식장(제일예식장은 1970년대부터, 다른 예식장은 1980년대부터 운영했을 것으로 추정)과 1994년 가든 명가로 문을 연 명가예식장이 있었지만, 농협예식장은 비교적 이용료가 저렴해 가장 대중적인 예식 장소였다.

옥천농협 이민호 차장은 "예식장이 설립되고 1990년대에 예식 전성기를 맞았다"면서 당시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실제 <옥천신문> 1991년 4월 13일 기사('평일 결혼 증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옥천읍내 모 예식장의 경우 토·일요일이면 평균 4-5건의 예식이 치러지는 등 주말에 예식이 집중, 다소의 문제가 발생돼 왔다. 이에 따라 예식을 올리는 당사자나 축하객들이 여유 속에 진행을 무리 없이 하기 위해 평일 결혼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는데 옥천농협 예식장의 경우 한 달이면 3-4건 정도에 이르고 있다."
 
 잔치방의 등장은 옥천읍 농협예식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잔치방의 등장은 옥천읍 농협예식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월간 옥이네
     
음식 준비에 허리휘는 가족들

1990년대, 옥천읍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고민은 바로 음식 장만이었다. 예식장이 생기기 이전에는 식사 대신 찹쌀떡이나 카스테라 등 답례품을 나누는 정도였지만, 예식장이 생긴 이후 점차 인근 커다란 식당에서 하객들과 식사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괜찮은 식당을 예약하고, 추가로 전이나 잡채, 갈비찜, 떡 같은 잔치 음식을 집에서 준비해오고, 또 정리하는 일은 신랑·신부 가족들의 몫이었다.


"중국집이나 규모가 있는 식당을 예약해서 손님 치른 거죠. 여기 앞(옥천읍 금구리)에 '문화루(2016년 폐업)'라고 3대가 해오던 큰 중국집이랑, '한밭식당'으로도 많이들 갔었죠. 양가 친척들이 한복 맞춰서 입고 나와 집에서 준비해 온 잔치 음식 나르고 그랬어요."

옥천읍에서 45년 이상 혼수이불 가게를 운영한 정영운(70)씨의 말이다. 이후 추세를 따라 예식장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기 시작했지만, 음식 준비는 이들에게 여전히 큰 고민이고 부담이었다.

이때 그 고민을 덜어줄 새로운 방안으로 '잔치방'이 등장했다. 남명순(67)씨는 1995년 옥천읍에 잔치방(옥천잔치음식방, 현 경성만두요리전문점 건너편 공용주차장 자리)을 열었다. 그 역시 가족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몇 차례 음식 준비에 어려움을 겪은 뒤였다.

"막내 시동생 결혼식 준비를 하는데 무척 고생스러웠죠. 수백 명 되는 사람들 잔치 음식을 집에서 해오고, 식당이며 식기구며 다 빌려서 준비하고, 설거지해야 하고... 결혼식 전부터 그 걱정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그걸 겪고 나니까, 이게 우리만의 고민이 아닐 텐데 싶은 거예요. 전문적으로 잔치 음식을 해준다면 그들의 고민도 덜어주고, 나도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고 괜찮겠다 싶었죠."

옥천잔치음식방은 이후 옥천잔치방으로 불렸다. 비슷한 시기, 이정희(83)씨는 일심잔치방(도립대 앞 카페 '카푸치노' 자리)을 열었다. 그의 친구 아들이 옥천농협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는데, 청주의 한 잔치방에서 음식을 마련해온 것을 본 게 계기가 됐다. 음식 솜씨가 남달랐던 그는 "내가 더 나은 잔치방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심잔치방을 시작했다.

이길순(75)씨는 1998년 농협예식장과 협력해 인근 농협방앗간(현 공영주차장 자리) 안쪽 방에 영진잔치방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농협예식장에 뷔페가 따로 없었어요. 가족들이 이렇게 불편한 상황이니, 당시 옥천농협조합장을 찾아가서 '내가 농협예식장 식사 준비를 전문으로 하는 잔치방을 운영해보면 어떻겠느냐' 제안했고, 좋은 생각이라는 답변이 왔죠."

잔치방이 불러온 변화
     
 옥천농협 예식장 내부
옥천농협 예식장 내부월간 옥이네
 
 영진잔치방 당시 사진
영진잔치방 당시 사진월간 옥이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잔치방이 생기자, 가족들은 식사 준비에 고생을 덜 수 있게 됐다. 취향에 맞는 잔치방을 찾아 식사를 주문하고 이들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옥천잔치방, 일심잔치방, 영진잔치방은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승승장구했다. 이후 2000년대 무렵 화목잔치방, 종가집잔치방, 역전잔치방, 한밭잔치방 등 후발 잔치방이 등장해 이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농협예식장은 잔치방을 입찰해 정하기도 했다.

잔치방 사업은 특성상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당시 결혼식에는 하객이 대략 300명에서 많을 때는 1천 명까지도 참석했는데, 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조리와 서빙 인력을 포함해 하나의 예식에 적어도 20~30명 이상 있어야 했다. 잔치방의 등장이 옥천읍 30~50대 여성들에게 새로운 일자리의 등장과도 같았던 이유다.

"그때 엄마들이 돈 벌 방법은 기껏해야 공장서 부업하는 일이었어요. 나도 잠깐 공장서 여름 구두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는데,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서 작업하려니 위장병이 생기고 힘들어서 금방 그만두었죠." (옥천잔치방 남명순씨)

"당시만 해도 여성들이 마땅히 돈을 벌 기회가 없었어요. 다들 집에서 애기보고 집안일만 했죠. 잔치방 생기고 일손이 많이 필요해지니까, 다들 앞다투어 와서 일했어요. 지금처럼 일손을 모집하는 공고를 붙이지 않아도 알아서들 찾아왔죠." (영진잔치방 이길순씨)

"바쁠 때는 하루에 10건을 담당할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면 하루에 일손 120명 이상을 고용했던 거예요." (일심잔치방 이정희씨)

잔치방은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 일손을 구했다. 한번 인연을 맺은 인력이 주변 지인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하는 식이었다. 한 사람이 10명 이상 데리고 오는 경우도 흔했다.

이렇다 보니, 당시 옥천읍에 거주하던 해당 나이대 부녀자라면 한 번쯤은 잔치방서 일해본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 일당 3~7만 원으로 당시로써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예식 행사를 마치고 나면 함께 뒤풀이도 즐겼다. 오랫동안 정을 나눈 이들은 멀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바쁘고 고되기는 했지만 즐거운 일도 많았어요. 일 끝나고 나면 같이 소풍도 가고, 노래방도 가고, 술 한 잔씩도 하고 재미났지요. 한번은 관광차를 한 대 빌려서 부산으로 여행 다녀오기도 했던걸요." (영진잔치방 이길순씨)

늘어나는 잔치방, 줄어드는 결혼식
 
 2011년 이후 현재는 공영주차타워가 들어선 궁전예식장의 옛 모습
2011년 이후 현재는 공영주차타워가 들어선 궁전예식장의 옛 모습옥천신문
     
초반에는 차림상 형식으로 잔치음식을 내놓았지만, 위생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서 점차 뷔페식으로 바뀌었다. 잔치국수, 갈비찜, 잡채, 수육, 각종 나물 등을 기본으로 30~40여 가지 반찬이 등장했고 가격대도 1인당 6500원에서 2만 원대까지 다양했다. 뷔페식으로 바뀐 뒤에는 반찬 가짓수가 50여 가지로 늘어나, 외관도 화려해졌고 가격대도 전보다 높아졌다.

"처음 뷔페식으로 바뀐다고 할 때는 직접 갖다 먹어야 하니까, 귀찮아하는 분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정부도, 농협예식장에서도 뷔페식을 권장했어요.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었지요." (옥천잔치방 남명순씨)

잔치방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2000년대 옥천읍에 새로운 잔치방이 하나둘 추가로 생겨났다. 계속될 것만 같은 잔치방 전성기였지만 동시에, 시대는 또 한번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이야 예식이 엄청 많았죠. 한 집에 자녀가 평균 3-4명이었으니까 줄줄이 결혼해봐요. 그런데 점점 결혼식이 없어지더라고. 잔치방은 많고 결혼식은 줄고 그러니 살아남기가 쉬운가요?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어요." (영진잔치방 이길순씨)

그와 함께 옥천읍 결혼식장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때 수많은 남녀를 이어주었던 궁전예식장은 2011년 옥천군에 매입, 철거된 후 3층 주차타워(공영주차장)로 탈바꿈했다. 제일예식장은 인근에서 오래도록 가게를 운영해온 이들의 입을 통해 존재했다는 사실만 전해져 내려올 뿐 정확한 위치조차 확인해보기 어렵다. 대원예식장은 옛 간판과 건축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농협예식장은 장소는 남아있지만, 실질적으로 결혼식이 진행되는 일은 많지 않다. 매년 옥천군과 농협옥천군지부, (사)농가주부모임옥천군연합회가 지원하는 합동결혼식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상황이다.

농협예식장 운영과 관리는 현재 옥천농협 건물 2층에서 명작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선우용덕(51) 대표가 담당하고 있다. 선우용덕 대표는 2005년부터 이곳에서 사진관을 이어오다가, 약 5년 전부터는 직접 농협예식장을 관리한다. 그는 "사실상 예식 사진 촬영은 거의 없고 출장 사진 촬영이 대부분"이라면서 최근에는 "예식이 1년에 3-4건, 각종 행사로 5-6건 정도 대관이 있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속에 남은 추억
 
 곳곳에 대원예식장의 옛 흔적이 남아 있다.
곳곳에 대원예식장의 옛 흔적이 남아 있다.월간 옥이네
 
잔치방이 결혼식 음식만을 해온 것은 아니다. 명절·환갑잔치·장례음식까지 대량의 음식이 필요한 자리라면 이들은 어디든 발 빠르게 찾아갔다. 그러나 잔치방을 운영한 이들이 가장 찬란했던 순간으로 꼽은 것은 모두 결혼식에서의 추억이었다.

"한번은 우리 잔치방이 충남도지사 아들의 결혼식 음식을 담당했는데, 그때 어마어마했던 규모를 잊을 수 없어요." (일심잔치방 이정희씨)

"옥천농협에 식당이 총 5곳 있었어요. 하루에 이곳에 모인 3500명 하객이 먹을 음식을 모두 준비한 적이 있죠. 참 대단한 날이었어요." (옥천잔치방 남명순씨)

"남녀를 잇고 가정을 이루게 한다는 게, 나에게 큰 기쁨이었죠. 갈수록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아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에요." (영진잔치방 이길순씨)

결혼식이 줄어들면서 잔치방도 점차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간 '옥천 잔치방의 시대'지만, 그때의 화려한 기억은 여전히 옥천읍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다음기사] 하루에 3500인분 뚝딱, 1세대 출장뷔페 개척한 그녀들의 손 http://omn.kr/21cr9

월간 옥이네 통권 64호 (2022년 10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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