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잔치방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군 옥천읍 시내를 걷다 보면, 문득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빛바랜 '잔치방' 간판이다.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듯 문이 굳게 닫혀 있지만, 사람들이 여럿 오갔을 흔적이 남아있다. 잔치방, 잔치를 기획하는 공간이었을까? 생소한 이름에 호기심이 생긴다.
돌잔치, 결혼잔치, 환갑잔치... 아기가 태어나고 무럭무럭 자라, 자신의 길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끝내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한 사람이 거치는 특별한 기념일이다. 이런 때마다 으레 잔치가 있곤 했다.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의 발돋움을 응원하는 자리였으니, '한 사람이 잔치와 함께 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음식은 잔치가 열릴 때마다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잔치방은 다름 아닌, 그 잔치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옥천읍 소재 잔치방은 옥천잔치방, 일심잔치방, 영진잔치방, 화목잔치방, 한밭잔치방, 역전잔치방, 종가집잔치방으로 총 7곳. 1990년대 중반에 하나둘 세워지고 2010년대 들어 하나둘 문을 닫았다. 왜 이토록 많은 잔치방이 옥천읍에 갑작스레 생겨나고, 또 문을 닫게 됐을까. 그 비밀을 찾아 30년 전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1989년 10월, 옥천읍에 상륙한 농협예식장
잔치방의 등장은 옥천읍 농협예식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옥천읍에 농협예식장이 생겨난 것은 1989년.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 별관으로 지하 1층-지상 1층의 농산물 판매장을 갖춘 농협타운이 설립되면서였다. 준공될 당시 1층은 신용 사업부 영업장, 2층 쇼핑센터, 3층 예식장 및 회의실, 4층 식당 및 소회의실, 농어민후계자 사무실 등으로 활용될 계획이었다.
"농협예식장 생기기 전이야 뭐, 극장이나 옥천문화원에서 결혼들 많이 했지. 나도 옥천문화원서 결혼했어. 옥천에 예식장이 생긴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야."
54년째 옥천읍에서 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김광성(79)씨의 말이다. 옥천읍 예식장은 농협예식장 외에도 제일·대원·궁전예식장(제일예식장은 1970년대부터, 다른 예식장은 1980년대부터 운영했을 것으로 추정)과 1994년 가든 명가로 문을 연 명가예식장이 있었지만, 농협예식장은 비교적 이용료가 저렴해 가장 대중적인 예식 장소였다.
옥천농협 이민호 차장은 "예식장이 설립되고 1990년대에 예식 전성기를 맞았다"면서 당시 분위기를 이야기했다. 실제 <옥천신문> 1991년 4월 13일 기사('평일 결혼 증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옥천읍내 모 예식장의 경우 토·일요일이면 평균 4-5건의 예식이 치러지는 등 주말에 예식이 집중, 다소의 문제가 발생돼 왔다. 이에 따라 예식을 올리는 당사자나 축하객들이 여유 속에 진행을 무리 없이 하기 위해 평일 결혼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는데 옥천농협 예식장의 경우 한 달이면 3-4건 정도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