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이희훈
물론 자유를 누리는 개인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책임을 기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수일 전부터 각종 미디어를 통해 상당한 인파가 이태원이라는 특정 구역에 몰릴 것이라고 예고되었고, 이러한 현상이 지난 수년간 꾸준히 있어왔다는 공지의 사실은 개인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하리라는 신뢰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결집 중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국가가 무슨 책임을 지냐며 심지어 그 문화와 모임 자체를 혐오의 대상으로 돌려 참석자들을 질타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런 의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주최자가 없는 상황에 대형 인파가 밀집한다면 그에 대한 관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정부 또는 관련 지자체의 기본책무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고, 그 세부적인 실행을 우리는 국가의 사회적 시스템이라 부른다.
특정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 일반 국민, 일반 시민의 자격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활동할 때, 그러한 일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가 보호해 준다는 신뢰는 주권국가의 시민 모두가 가지는 보편적, 내재적 신뢰이며 그 신뢰는 안전관리 시스템의 작동으로 담보되어야 한다.
지난해 연말,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현장을 둘러보며 늦은 밤 귀가 길이 두려워서는 안된다며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필자는 지금 윤 대통령이나 정권을 단순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말이 정답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늦은 밤 어두운 길을 자발적으로 걷는 시민의 안전을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공개된 장소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의 안전을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해당 지자체, 즉 내가 거주하는 용산구에 대한 비판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용산구의 경우 매해 반복되는 핼러윈의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있었고, 이태원의 좁은 골목들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으며,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가 가져올 부수적 상황도 예측할 수 있었다. 즉,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의 특수성을 잘 아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아니, 최소한의 시스템도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예년과 큰 차이가 없어서 우려할 정도 아니었다"라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발언은 필자의 분노 버튼을 눌렀다. 유사한 상황에서 과거에 사고가 없었으니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문제가 없다는 장관의 인식은 국민의 안전은 정부의 무한 책임이며 과할 정도의 선제적 조치가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상민 장관은 국민의 안전을 우연과 행운의 연속성에 걸고 있다는 말인가? 정부 내부의 이런 인식 부조화가 결국 시스템의 정상 작동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국민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