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왼쪽부터 계훈제, 장준하, 김재준, 함석헌, 이병린
함석헌기념사업회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이 극심해지면서 그의 역할도 많아졌다. 1974년 5월 4일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위원은 양호민ㆍ김용준ㆍ조지송ㆍ이태영ㆍ이우정 등이다.
같은 해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였다.
① 자유언론을 수호하기 위해 어떠한 부당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이를 배제하며
② 언론인들이 보도 활동과 관련하여 부당하게 연행 구금당할 경우 귀사할 때까지 철야농성을 하며
③ 학생ㆍ종교인 등 각계의 정당한 의사 표시는 반드시 게재한다는 등 3개항을 결의했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은 곧 전국의 신문 방송 통신 기자들의 자유언론 선언운동으로 번졌다. 권력과 유착한 사주들이 '선언'에 참여한 기자들을 회사에서 쫓아냈다. 정부는 각 기관과 기업의 광고주에 압박하여 계약된 광고를 해약함으로써 '백지광고'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국민 각계에서는 '동아'를 살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격려 광고' 운동이 벌어졌다. 법조계에서도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돈명ㆍ홍성우ㆍ황인철 변호사 등 몇 사람과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 모여 변호사들을 상대로 '동아 격려 광고' 성금을 모으기로 합의하였다. 광고란에 성금을 낸 변호사 이름과 격려(또는 정부 규탄) 문구를 싣는 방식이었다.
모금활동은 대체로 호응이 좋았는데, 일부 변호사는 돈은 내겠으나 신문 광고란에 이름은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신문에는 물론이고, 모금내용을 적는 내부 장부에도 이름을 남기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런 성금이 모여 거의 한 달 동안 법조계의 격려광고가 '동아'의 광고란을 채울 수 있었다. (주석 3)
그 무렵 한승헌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1974년 11월 18일 결성)의 회원이 되었다. 고은ㆍ신경림ㆍ염무웅ㆍ박태순ㆍ황석영ㆍ조해일 등이 주축이 되어 구속자 석방, 민주헌정회복 등을 내걸었다. '구속자를 위한 밤'이 열리고, 그는 자작시를 낭독하여 문인들의 갈채를 받았다.
정계ㆍ천주교ㆍ기독교ㆍ불교ㆍ언론계ㆍ학계ㆍ문인ㆍ법조인ㆍ여성계 인사 71명은 1974년 11월 27일 서울 YMCA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민주회복국민회의(국민회의)를 발족하였다. 윤형중(상임대표원) 이병린ㆍ이태영ㆍ양일동ㆍ강원룡ㆍ함석헌 등 10인을 대표위원으로, 한승헌ㆍ함세웅ㆍ홍성우ㆍ김병걸ㆍ임재경 등을 운영위원으로 하여 체제를 갖췄다.
정치활동이 아닌 국민운동을 목표로 하는 민주회복국민회의는 자주ㆍ평화ㆍ양심을 행동강령으로, 민주회복을 목표로 삼아 활동에 나섰다. 전국적으로 국민의 호응을 받자 정부의 탄압이 가해졌다. '국민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김병걸 교수가 사직한데 이어 안병무ㆍ문동환ㆍ박봉랑ㆍ서남동ㆍ이우정 교수가 경고조치, 서울대 백낙청 교수는 파면되었다.
정부는 1975년 1월 17일 대표위원의 한 사람인 이병린 변호사를 구속하였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법조계 원로로서 그동안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앞장서왔다. 정부가 그를 제물로 삼은 것이다.
그분이 난데없이 구속 수감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나는 곧장 서울구치소로 가서 접견을 하였다. 이 변호사님은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구속 전날, 기관원이 찾아와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을 사퇴하라며, 만일 불응하면 내일 간통죄로 구속될 것이라고 협박을 하였다.
이 변호사님은 그런 사퇴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랬더니 그 기관원의 말대로 그 다음날 검찰에 '간통죄'로 구속되고 말았다. 이것이 이 변호사님 말씀의 요지였다. 뒤에 알아보니, 간통죄 구속영장을 웬일인지 시국사건 비밀영장을 담당하는 판사가 발부했다는 것이었다. 비밀리에 간통을 했기에 비밀영장이 나간 것이 아닐까. 이것은 나의 독보적 '해몽'이었다. (주석 4)
한승헌은 정부가 법조계의 선배인데다 함께하는 단체(국민회의) 대표위원을 엉뚱하게 간통죄를 씌워 구속한 데 분개하면서 변론을 맡았다. 하지만 이 사건의 재판 진행 중에 자신 또한 구속수감이 되면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주석
3> <자서전>, 182~183쪽.
4> 앞의 책,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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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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