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2022년 11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열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상은(25·여) : 이씨는 외동딸이다. 미국에서 일하겠다는 포부에 1년 반 공부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미국 회계사 자격증까지 땄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아버지는 말을 삼켰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아버지는 1박 2일로 등산을 다녀오느라, 참사 다음 날에야 딸의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등산 가기 전날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원래는 인사하러 나오던 딸이 방 안에 있었다"라며 "딸이랑 마지막 인사도 못했다"고 말했다. 참사 이틀 후, 이씨가 가고 싶어 한 회사에서 합격 문자가 날아왔지만 그는 출근하지 못했다. (관련 기사 :
이태원 참사로 26세 딸 잃은 아버지의 부치지 못한 편지 http://omn.kr/21pno)
고아무개(25·여) : <오마이뉴스>·<한국일보>에 따르면, 고씨는 아버지의 휴대폰에 '보배'라고 저장돼 있는 소중한 딸이었다. 고씨는 3년 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위해 골수를 기증했고 자신의 생일에도 "좋은 날에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아버지와 애틋한 사이였다. 고씨가 아버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엔 꼭 '하트(♥)'가 빠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보곤 건강하라고, 오래 살라고 해놓고... 지금이라도 (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라고 되뇌었다.
(관련 기사 : 골수이식까지 해준 '껌딱지' 딸 잃은 아버지의 울분 http://omn.kr/21rfl)
김아무개(25·남) : <한겨레>에 따르면, 김씨는 친구 5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그 중 3명이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참사 당일 저녁 8시 아들은 "사람이 많아서 밥 먹기 힘들다"고 했다. 사고 소식이 뜨자마자 아버지는 익산에서 서울로 내달렸지만 서울에 도착하기 직전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김씨는 지난 9월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한 후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 부모 걱정을 덜어줬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은 너무나도 착하고 성실했다. 사회에 도움 되는 사람이었다"라며 "새로운 일을 알아보며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었다"라고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아무개(25·여) : <경인일보>에 따르면, 오씨의 가족 모두가 가톨릭 신도다. 오씨의 세례명은 '로즈마리'. 오씨는 친구 1명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으나,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도 한 장한 딸.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딸이었다, 정말 착실하고 애교도 많은 딸이었다"고 말했다.
장아무개(25·남) : <전남일보>·<뉴스1> 등에 따르면, 장씨는 웃음 많고 속 깊던 막내였다. 집에 오면 엄마 볼에 뽀뽀하던 애교 많은 아들이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 많은 청년이었다. 전역 후 대학에 입학한 뒤 올해 초 제조업체에 취직한 그는 코로나19로 가지 못했던 형·누나와의 해외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자신이 먼저 취직해 여윳돈이 생겼다며 형·누나의 여행경비를 흔쾌히 내기도 했다. 큰아버지는 "집안에서 가장 웃음이 많고 쾌활하던 아이가 이렇게 차가운 몸으로 돌아온 게 믿기지 않는다"라고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OOO(26·여) : <세계일보>에 따르면 그는 영상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다 세 달 전에 인천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사고 당일 그는 부모님에게 '놀러간다'고 연락을 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했다.
OOO(27·여) : 2023년 5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던 그는 7급 공무원이었다. <국민일보>·<뉴시스> 등에 따르면, 명문대를 졸업해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집안의 자랑스러운 장녀였다고 한다. 그는 결혼할 남자친구와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참사를 당했다.
"◯◯아 가지마, 엄마는 널 못 보내겠어"
같은 학과 친구 노아무개(27·여), 박아무개(27·여) : 노씨의 꿈은 간호사였다. 부산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전문성을 쌓기 위해 지난 3월 전남지역 대학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국제신문>·<중앙일보> 등에 따르면 사고 당일 같은 학과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둘 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시험 잘 쳐서 장학금 탈 수 있을 것 같아, 걱정마요. 다음 주엔 부산 갈게요." 그가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10월 30일 새벽 노씨의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딸 어디야, 혹시 이태원은 아니지?"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답은 없었다. <더팩트>와 만난 노씨 친오빠는 "어릴 때부터 빵 등 집안에 먹거리를 가져다 아파트 1층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에게 드렸다, 주변사람을 잘 챙겼다"고 전했다.
<광주일보>·<무등일보> 등에 따르면, 박씨는 고향을 떠나 일하면서도 매일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던 정 많은 딸이었다. 일찍부터 간호조무사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는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 전남지역 대학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동기 노씨와 이태원을 찾은 그는 참사 후 병원으로 옮겨져 하루를 버텼지만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족은 평소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박씨의 뜻을 따르려고 했으나 압사로 인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한 달 전 딸과 여행을 갔었다는 어머니는 "(여행지에서 딸이) '취업하면 우리 더 행복하게 살자, 내가 더 잘할게'라고 약속했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심아무개(27·남) : < BBC > 등에 따르면 심씨는 운동과 스키, 서핑을 좋아하는 건장한 청년이자, 그의 동생에겐 "최고의 형"이었다. 여유가 될 때마다 웨이트 운동을 즐겨했다. 고인의 절친한 친구는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를 모든 장소에 초대하고 함께 태권도를 시작하도록 격려했다."
OOO(27·여) : <국제신문>·<부산일보>에 따르면, 부산에서 2년가량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지난 3월 서울 치과에 취업했다. 사고 당일에도 회사 동료 5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편의점에 가기 위해 무리에서 이탈한 사이 인파에 휩쓸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삼촌은 "평소 쾌활했다. 이런 사고를 당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김아무개(29·남) : <광주일보>·<뉴시스> 등에 따르면, 김씨는 이제 막 꿈을 펼치려던 의지의 청년이었다. 국가공인자격증 중에서도 취득이 어렵다는 토목기사 자격증을 따낸 그는 지난 8월 유명 토목회사에 취직하며 감리자로 현장 배치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이태원에 모인 그날, 김씨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전날까지 아들과 안부를 주고받은 부모님은 참사 당일 아들에게 수백 통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서야 아들의 번호로 온 전화에선 경찰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운구차 앞에서 어머니는 "◯◯아 가지마, 엄마는 널 못 보내겠어"라며 오열했다.
김아무개(29·남) : <경인일보> 등에 따르면 김씨는 참사 당시 주변 사람들의 공간을 확보해주려다 미처 피하지 못해 사고를 당했다. 김씨의 친구는 "장난기가 많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그의 어머니도 "집에서는 무뚝뚝할 때가 많지만 때론 친구처럼 때론 남편처럼 정말 든든한 아들이었다"고 전했다.
OOO(29·여) : <뉴스1>·<뉴시스> 등에 따르면 그는 이태원 근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화를 당했다. 야식을 사러 편의점에 간 길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부모 속을 한 번 썩인 적 없고 직장도 좋은 데 다닌 딸"을 잃었다. 아버지는 딸의 남자친구를 장례식장에 처음 봤다. 아버지는 "내가 평소 말한 대로 좋은 남자를 만났다"며 "(결혼하면) 좋게 잘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라며 울먹였다.
<오마이뉴스>에 이태원 희생자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으신 분은 record1029@ohmynews.com으로 메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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