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지 시인의 시집
파란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갑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프롤로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쓴다 이것이 나의 병입니다 … 내가 나를 다시 찾아 들고 내가 정말 나인가 묻고 또 묻고 있는 이것이 여전한 나의 병입니다' 한쪽 다리를 다쳐서 신발 한쪽이 '열외'된 경우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신발은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뒹굴던 신발이 어디론가 사라져도 신경 쓰지 않겠죠. 신발은 새로 사면 그만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깁스를 하는 일이 일상적이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참 많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질문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시인의 시선은 시 「시 11」의 '암흑'으로부터 두렵고 캄캄함만이 아니라 부드럽고, 한없는 아량을 발견합니다. 시 「열외」에서 하루에 몇 차례 뒤꿈치를 살짝 대이는 것만으로 묵묵히 열외를 견디는 신발을 발견합니다. 이 아픈 발을 통해서 더 높이 더 가볍게 나는 새들과 더 빨리 더 큰 소리로 달리는 자동차를 발견합니다.
이처럼 발견할 수 없는 것을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사람·마음 등을 재발견하려는 시인의 시선, 그것이 바로 시인이 가지려하는 '시를 향한 믿음'이 아닐까요. 소외된 것들, 열외 된 것을 진심으로 호명하려고 노력하는….
'직립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 허리 고마운 줄을 몰랐다 / 굽힐 줄을 몰랐다'(「허리 고마운 줄 몰랐다」) 중에서.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향지 시인은...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햇살 통조림』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산아, 산아』 등이 있습니다.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야생
이향지 (지은이),
파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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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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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고마운 줄 몰랐네... 42년생 시인의 읊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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