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들과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회원들이 지난 2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세월호참사 및 그 이후 발생한 국가폭력 책임 인정·공식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희훈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1심과 동일하게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최상환 전 해경 차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 등 해경 구조 관련 책임자 9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출동한 해경은 침몰이 임박한 상황인데도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말조차 전하지 않고 선장과 선원들만 데리고 나왔다. 만약 해경이 퇴선조치를 했다면 승객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나와서 살았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나오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모두 무죄를 받았다. 국가의 지휘, 명령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공무원체계, 행정권력의 작동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말이 안 되는 판결이다. 불처벌이다.
공무원으로서 특정 지위와 명예를 누리고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의무는 지키지 않겠다는 것은 국가의 부재를 반증한다(정확히 하면 서민들에게 국가는 없다). 헌법34조에 명시된 구조의 의무, 재난안전관리법상의 의무, 공무원법7조의 의무를 이행하고 이를 위반할 시 받아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2014년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에선 말단 공무원 한 명만 징계받았고, 같은 해 장성요양병원 화재 참사에서는 인허가과정에서 뇌물 의혹이 있음에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 결과 국가의 안전관리감독의 공백은 커지고 재난은 공백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설상가상 형사처벌도 아닌 징계조차 부당하다고 재판을 거는 공무원들이 나온다. 인천해양항만청장(2012.6.~2014.3.)은 감봉 1개월의 징계조차 부당하다며 징계취소 소송을 걸었다. 인천해양항만청은 세월호의 증선 선박과 계류 시설 확보를 조건으로 사업계획변경 인가를 하고서도 이후 확인하지 않고 청해진해운의 기한 연장을 허가했다. 그는 부실 인가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다.
국가시스템의 오작동,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방기는 한 명의 잘못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허가를 잘못 내주고 과적과 과승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구조해야할 사람들이 보이는데 선장과 선원만 구조해오고 나오는 해경, 대형재난발생도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 중앙정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불법사찰하는 경찰과 국정원 등, 이 모든 것이 맞물려 돌아갔다.
국가권력의 행사 주체(공무원) 없는 국가는 없다. 고위공무원과 중간공무원, 말단공무원들이 함께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자의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않도록 의무와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전체를 총괄하는 고위공무원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으나 고위공무원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고위공무원의 처벌은 국가책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책임은 단지 민사배상으로 그칠 수 없다. 민사법정도 123정장의 책임만 물었다.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 미작동'이나 '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 지휘' 등에 대해서는 "직무상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사망과도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헌법상 국가책임은 주체인 국가가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헌법상 의무를 국민(객체)에게 지도록 하는 것이다. 헌법 10조와 34조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은 국가책임을 형사법정에서 지도록 해야 한다.
정의와 불처벌에 대한 국제인권 원칙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은 정의와 인권을 침해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1997년 UN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서는 불처벌 투쟁을 위한 효과적 전략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것은 2005년 UN총회에서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 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2005, A/60/509/Add.1)'으로 채택된다. 이어 '불처벌 반대를 통한 인권보호원칙(2005, E/CN.4/2005/102/Add.1)', 2006년 '진실에 대한 권리에 관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보고서(2006, E/CN.4/2006/91)'도 나온다.
불처벌은 피해자들의 진실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 피해자를 주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의 주체로 바라보고, 가해자 처벌과 피해 회복이 떨어져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불처벌 반대를 통한 인권보호원칙'에서 정의에 대한 권리는 공정하고 효과적인 구제에 대한 권리를 뜻한다.
"정의에 대한 권리는 국가의 의무를 포함한다. 침해를 조사할 의무, 가해자를 기소하고 그 유죄가 성립된다면 처벌할 의무이다."
정의는 가해자 처벌의 한 요소이며, 사법부가 가해자를 처벌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는 "위반에 책임이 있는 사람에 대한 사법적 및 행정적 제재"를 명시로 강조된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 책임 있는 자들이 징계조차도 받지 않고 승진하는 책임자들이 있는 현실은 세월호 유가족들, 피해 생존자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이렇게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은 피해자들에게도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힌다. 실제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을 경우, 트라우마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5.18광주학살 피해자). 피해자 권리에 대해서는 이미 1960년대 유럽의 피해자학, 1970·1980년대 북미와 유럽 다수 국가들에 피해자의 권리 보호를 형사사법절차 속에서 제도화했다.
이러한 바탕 위에 1985년 UN은 '범죄와 권력남용의 피해자를 위한 정의에 대한 기본원칙 선언'를 채택했다. 앞서 서술했듯 UN도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임을 인정한 것이다. 피해자의 권리에는 정의를 추구할 권리, 배상받을 권리와 재발방지에 대한 권리등이 포함되며, 정의에 대한 접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불처벌이 잔인한 국가를 지속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