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대 융합미술작가.
최방식
"연변대 미술대 한국분원 석좌교수를 2년 전부터 맡고 있어요. 아시겠지만, 코로나19로 수업을 할 수 없었잖아요. 자리만 지키고 실제 교육활동을 못한 것이죠. 엔데믹으로 막 풀리려는 데 한중관계가 꼬이며 좀 불투명하지만, 이겨내 잘 해봐야죠."
평생 회화를 해왔지만, 출발은 디자인(공업디자인)이라는 남다른 이력의 김 작가. 그의 융합미술 결정판은 화투 6월 그림의 그 모란꽃에서 시작했다. 2018년 강동문화원이 주최한 '모란꽃 사상 작가 초대전' 때 탄생한 것. 그는 평면(유화)과 입체(부조)의 혼합을 시도했다. 인기 최고였다.
4월에 피어 곡우화(穀雨花)로 불리는 모란. 부귀를 상징하며 중국에서는 꽃 중 왕으로 칭송받는다. '꽃 중 재상'으로 불리는 작약과 사촌지간. 둘 다 자태가 아름다워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으란 말도 있다. 사람이 꽃에 집착하는 걸 두보는 이렇게 노래한다. "꽃을 죽도록 사랑해서가 아니라 꽃 지면 늙음이 다가오는 게 두려울 뿐." (시 '강가를 혼자 걸으며 꽃을 찾다' 중)
그의 미술 열정은 초등학교부터 남달랐다. 1학년 때 엄마 그리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 중학교에서도 그의 재능은 도드라졌다. 중2 때 그림이 화제가 됐다. 미술부에 반강제 추천됐는데, 그는 거절했다.
"사실 집에서 반대했죠. 미술로 먹고 살기 힘들다며. 미술부 활동을 안 하려고 한 거죠. 그런데 급우들이 막무가내로 추천했어요. 미술부 선배(당시 중고 통합 활동)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저를 끌고 가 각목으로 패기까지 했어요."
결국 중2 때부터 자의반 타의반 미술부활동을 시작했다. 대학(홍익대)까지 미술공부로 이어졌다. 문제는 회화를 하고 싶었는데 공예과(성적 문제)에 입학한 것. 집안 반대로 학비를 못타, 그는 화실을 차려 돈을 벌며 공부를 했다.
"꽃 지면 늙음 다가오는 게 두려워"
"회화를 하고 싶었기에 학교 수업은 뒷전이었죠. 결국 3학년 때 학업을 포기하고 화실에만 박혀 살았죠. 1984년 서울산업대(이후 서울과학기술대) 공업디자인과(이 학교에 회화과는 없음)에 들어가 졸업했죠."
석사는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회화)로 땄다. 공업디자인 전공자로는 당시 합격한 이는 그가 이 학교에서 유일했다. 앞서 화실을 운영하던(대학 중퇴) 27살 때 수채화 공모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은 데다 논술 시험을 잘 봤던 게 유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