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교관들이 거처했던 '고려촌'신흥무관학교 교관들이 거처했던 '고려촌'
박도
만약 제 말을 믿지 못하신다면 청컨대 홍인(紅人)과 흑인(黑人) 두 종의 인류를 보십시오. 그들도 또한 다수의 민족인데 무슨 까닭으로 백인의 노예가 되어 쇠사슬의 아래에서 신음하고, 궁벽한 골짜기의 불모지에서 우는 것입니까?
또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무슨 까닭으로 조상 때부터 전래되어 온 3천리 옥토를 다른 민족에게 양여하고 이역에서 떠돌며 슬픈 비바람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까? 이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교육이 발달하지 못하면 지식과 기능이 타인에게 필적하지 못하여 남의 압박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아. 제군들이여! 측간의 구더기가 똥을 즐기는 것은 그 더러움을 편안히 여겨서입니다. 골짜기의 새가 교목으로 옮겨 가는 이유는 밝은 것을 취한 것입니다. 지난날 우리들은 문을 닫고 깊숙이 거처하면서 외인(外人)들을 접하지 않았기에 절로 이미 비루하고 열등하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새로 개벽하여 다섯 인종이 서로 경쟁을 하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이빨로 무는 놈 밖에 뿔로 받는 놈이 있습니다. 승냥이와 호랑이, 해동청과 새매가 채어 오르고 치고 물어대니, 오주(五洲) 어느 곳에 활인생불(活人生佛)이 있어서 특별히 비루하고 열등한 우리들에게 인애를 베풀겠습니까?
이 나라 중국으로 논해보자면 지난날 교육이 보급되지 않았을 적에는 오히려 비루하고 어리석은 풍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중화민국의 새로운 문교가 발전하는 시대 입니다.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도 본토인이 크게 변화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우리들은 이런 때를 당하여 야매(野昧)·무지한 민족이면서도 캄캄한 밤중에 어리석은 꿈을 꾸고 있으니, 그 형세로 볼 때 장차 대몰림을 당하여 편안히 거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른다면 우리들은 비록 한 달에 아홉 번 식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교육을 힘쓰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권리'입니다. 권리는 우리 인간의 생명의 뿌리입니다. 저 초목을 보더라도 뿌리가 썩고 손상되면 줄기와 잎은 절로 시들어 버리는데, 사람이 권리를 얻지 못하고서 어떻게 생명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권리라는 것은 자기가 적극적으로 찾으면 얻을 수 있고 자기가 내버려두면 잃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5억 인종은 장기를 겨루고 능력을 다투고 있습니다. 작게는 머리통을 부딪쳐 선혈이 흐르고, 크게는 나랏돈을 고갈시키고 백성의 목숨을 잃으면서도, 후회하지 않고 각자 먼저 무대에 오르기 위해 승부를 거는 것은 모두 권리를 확장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개인 품격의 고하는 이런 사상의 후박과 관계가 있고, 전국 세력의 강약은 이런 사상의 다과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만약 믿지 못하겠다면 청컨대 저 영국·미국·프랑스·독일 사람들을 보십시오.
저들이 어떻게 해서 기세등등하면서 우주를 삼키려고까지 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저 인도·월남·유태(파키스탄) 사람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숨이 끊어질 듯 하면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이겠습니까? 민족의 흥망은 한결같게 권리의 유무에 관계가 된다는 것이 이처럼 명료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경우는 옛날부터 권리경쟁에 관한 의론을 드러낸 학자가 없었습니다. 2천만 생령들이 권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함부로 오활하고 진부한 견해를 가지고 기꺼이 고인(古人)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비열하고 나약한 것을 유가의 본색이라고 자칭하고 양보하고 용인하는 것을 선비의 미덕이라고 인식하여, 무도한 침탈을 받으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부조리한 곤욕을 겪으면서도 따질 줄을 몰랐습니다.
결국 열등한 습성이 본성이 되어 조종(祖宗)의 강토를 남에게 바치고 살길이 막막하여 외지를 떠돌게 되니, 의지할 데 없고 호소할 데 없는 망국의 민족에게 말할 만한 권리가 다시 무엇이 있겠습니까?
보증금과 소작료를 타인에 비해 몇 배나 더 지급하면서도 마치 얇은 얼음을 밟는 듯 소심하게 근신하면서 오히려 동정을 얻지 못할까를 걱정하다 보니, 속이고 업신여기는 패단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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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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