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입양 2년 후 한국에서 혼 남동생과 어린시절
마가렛요세프손
1991년,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한국을 방문한 마가렛이 짐을 푼 곳은 서울의 어느 보육원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6개월간 자원봉사를 하며 지냈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이 시설로 오고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시설과 집단생활 속에 자라는 아이들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입양되지 않았다면 이 아이가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자신이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좋은 삶을 살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들은 시설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었지만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며 유일무이하게 특별히 대해줄 사람은 거기 없었다. 더군다나 1990년대 초 한국은 어디에서나 물리적 폭행이 만연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는 혼자 시설 밖으로 나가야 하고 부모도 가족도 없이 혼자서 모든 걸 다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6개월의 시설봉사를 마치고 마가렛은 스웨덴으로 돌아갔다.
1993년 어느날 생부로부터 편지가 왔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녀는 아이들은 가정 안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해야 한다는 너무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런 단순하고 평범한 삶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사회사업과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스물 네 살이던 1993년 어느날 한국으로부터 마가렛 앞으로 편지가 날아들었다. 편지를 보낸 이가 생부라고 했다. 유기 되어 입양된 줄로만 알았던 마가렛에게 큰 충격이었다. 생부는 늙어 기억이 사라지기 전 할머니를 붙잡고 가슴에 새겼던 혜란을 다시 찾아 나섰다. 이십여 년 기억을 되짚어 경찰서에서 병원을 거쳐 입양기관을 통해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한국에서 생부를 만나기까지 많은 편지가 오고 갔다. 생부는 편지에 혜란을 낳기 전후의 상황을 자세하게 말해줬다. 생부는 그 시기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마음을 고백했고 그 마음이 너무 안 되고 슬퍼서 마가렛은 울었다. 생부와의 편지는 그치지 않았고 둘은 서로의 삶을 이야기 해주었다. 없는 줄만 알았던 출생정보를 알고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의 혼란스러웠던 감정은 사라졌다.
1995년, 한국에서 마가렛과 생부가 첫 상봉을 했다. 편지로 이미 익숙해진 마가렛은 편안한 마음으로 반갑게 생부를 마주했다. 생부는 표정에서부터 숨길수 없는 죄책감으로 오래전 잃었던 딸을 안았다. 생부의 그런 죄책감이 절실하게 다가와 마음이 무거웠지만 생부를 만난 것 자체가 주는 기쁨으로 마가렛의 마음은 충만했다.
생부는 생모와의 반복된 만남과 헤어짐 속에 숨은 사연을 말하기 꺼려했다. 궁금했지만 생모에 대한 지난 삶과 사연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생모를 만났지만 죄책감 때문인지 계속된 만남을 불편해 하다 몇 년 전부터는 만나는 것마저 피하고 있다. 마가렛은 아직 생모의 지난 수십 년의 삶과 고민을 알지 못한다.
생부를 만나고 두 남동생도 만난 마가렛에게 이제 한국은 또 다른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다. 자신을 유기한 할머니에 대한 원망도 없다. 당시의 할머니를 원망하는 것보다 할머니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스웨덴에서의 마가렛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이어갔다. 마가렛은 지금 건강센터에서 카운셀러로 일한다.
"내 폐는 한국이고 공기는 스웨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