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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유네스코 세계유산, 대단하지만 안타까운 것

[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⑩] 하크파트 수도원

등록 2023.09.11 08:53수정 2023.09.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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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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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베다강 건너 아르메니아 국기가 보인다. ⓒ 이상기


카프카스 남쪽에는 세 나라가 있다. 동부에 아제르바이잔, 중간에 아르메니아, 중서부 지역에 조지아가 위치하고 있다. 이번에는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로 국경을 넘어간다. 그것은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으로 두 나라 사이가 아주 아주 나빠져 조지아를 통해 아르메니아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 일찍 국경도시인 사다클로(Sadakhlo)로 향한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아 조지아 버스를 타고 아르메니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국경을 넘을 때 버스를 내려 입국심사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 때문에 줄을 서야 한다. 1시간 정도 걸려 출국심사를 받고 나오니 버스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이제 버스를 타고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국경인 데베다(Debeda)강을 건너야 한다. 국경 이쪽 언덕에 조지아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 아르메니아 바그라타쉔(Bagratashen) 입국심사장이다. 여권을 제시하고 입국비자를 받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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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입국심사장 ⓒ 이상기


입국장 밖에서 아르메니아 가이드 슈샨(Shushan)이 손짓을 한다. 슈샨 역시 아르메니아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지식인이다. 아르메니아에서는 교수보다는 강사 개념이어서 방학 때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수속을 끝내고 모든 사람들이 차를 타자 잠시 후 환전을 위해 아름아트(Arm-Art) 슈퍼 겸 환전소에 잠시 들른다. 아르메니아 화폐는 드람(dram)으로, 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93년 11월부터 사용되었고, 보조화폐 단위로 루마(luma)가 사용된다. 1드람은 100루마다. 환율은 1드람이 3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크파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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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크파트 수도원 ⓒ 이상기


환전소를 떠난 버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크파트(Haghpat)로 향한다. 가는 길은 데베드강을 따라 상류로 이어진다. 조지아어로 데베다, 아르메니아어로 데베드인데 아르메니아 북쪽 산악지역에서 발원한다.

강폭이 좁고 유속이 빨라 래프팅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어 경치가 참 좋다. 데베드강은 조지아와 국경을 이루며 조지아 동남부를 흘러 아제르바이잔 쉬클리(Shikhly)에서 쿠라강과 합류한다. 길이는 176㎞, 유역면적은 4,080㎢로 나와 있다.

이 골짜기를 1시간쯤 달려 하크파트 수도원에 도착한다. 하크파트 수도원은 10세기에서 13세기 사이 조성된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수도원이다. 중세 바그라티(Bagrati) 왕조의 아쇼트 3세 때인 976년 왕비 호스로바누이시(Khosrovanuysh)의 후원으로 성 느샨(Saint Nshan)교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 교회가 완성된 것은 991년으로 슴바트(Smbat) 2세 때다. 1005년에는 규모가 작은 성 그리고르(St. Grigor)교회가 성 느샨교회 남서쪽에 지어졌다. 그러나 1130년 지진이 일어나 크게 파괴되었고, 50년 이상이 지난 1200년대 초에야 성 느샨교회의 재건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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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느샨교회 ⓒ 이상기


이때 가빗(Gavit)으로 불리는 전실, 하마자스프(Hamazasp)로 불리는 측실의 확장이 이루어져 1257년에야 완성되었다. 하마자스프라는 이름은 하크파트 수도원 원장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1245년에는 3층으로 이루어진 종탑이 교회 북동쪽에 세워졌다. 1248년에는 성 느샨교회 북동쪽에 식당이 지어졌다.

그리고 1273년 아주 작은 규모의 성모교회가 성 느샨교회 북서쪽에 세워졌다. 11세기에 교회 북쪽에 연결되었던 도서관 역시 1200년대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현재 도서관의 땅바닥에는 커다란 항아리들이 묻혀 있다. 이는 도서관의 용도가 수도원에 필요한 물건들을 저장하는 창고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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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 ⓒ 이상기


수도원은 지진피해뿐 아니라 외적의 침입으로 여러 번 훼손되었다. 그러나 재건과 확장을 통해 원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 때문에 아르메니아에서 원형을 가장 보존하고 있는 수도원으로 남게 되었다. 중세시대 아르메니아 종교건축의 걸작으로, 비잔틴 양식의 토대 위에 아르메니아 지역의 전통 건축양식을 가미한 독특한 수도원이다.

이 때문에 1996년 이웃하고 있는 사나힌(Sanahin)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사나힌 수도원은 하크파트 수도원보다 빠른 940년경 성모교회 건축과 함께 시작되었다. 본당인 구세주교회가 세워진 것이 966년이다. 그 후 신학교가 세워졌고, 이 지역의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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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느샨교회 돔의 프레스코화 ⓒ 이상기


하크파트 수도원의 성 느샨교회로 들어가려면 먼저 전실을 지나야 한다. 전실은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를 하는 장소다. 이곳을 지나 본당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통로 양쪽으로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통로 앞쪽 돔 아래로 제대가 있고, 그 안쪽에 하츠카르(Khachkar)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하츠카르는 그 역사가 9~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르메니아 특유의 십자가다. 십자가를 보석처럼 정교하게 가공하고 조각한 예술작품이다. 그리고 하츠카르 뒤쪽 반원형의 벽면과 천정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가장 위쪽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호위를 받으며 앉아 있다. 그 아래로 예수의 삶과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아래로는 가운데 창을 중심으로 양쪽에 여섯 명씩 성인이 서 있는데, 십이사도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 아래로 또 다시 인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세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훼손되었다. 이 벽화는 원래 13세기에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훼손이 심해 2018년 출리얀(Sepouh Chuliyan) 대주교의 지도하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제대 앞 서쪽의 벽면에는 최근에 그려진 성모자상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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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크파트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 ⓒ 이상기


하크파트 수도원은 이제 종교적으로 신성한 장소이기보다는 오래된 문화유산으로 보인다. 신부와 관리인도 보이질 않고, 안내판이나 설명자료도 부족해 보인다. 관광객들은 몰려오는데, 이들에 대한 안내와 통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근 알라베르디(Alaverdi) 공업지대에서 나오는 환경오염 물질이 장기적으로 수도원 건물을 부식시킬 수도 있다.

아르메니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둘러보면서, 이들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대단함을 알 수 있었지만, 현재 이들을 유지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 안타까웠다.

알라베르디 공업지대 지나 딜리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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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광산으로 유명한 알라베르디 ⓒ 이상기


하크파트 수도원을 보고 나서 우리는 데베드 강변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곳이 해발 700m가 넘는 산골이어서 강물이 차고 유속이 굉장히 빠르다. 강 건너 산의 높이가 2,000m를 넘는다고 한다. 식당의 정원에는 여름꽃이 한창이다. 백일홍, 분꽃, 장미, 달리아, 코스모스가 보인다.

이곳 알라베르디 지역은 한때 아르메니아 최대의 구리광산이 있던 곳이다. 1813년 굴리스탄(Gulistan) 조약으로 이 지역이 러시아제국에 속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구리광산이 개발되었다. 1899년 트빌리시와 알렉산드로폴(Alexandropol)을 운행하는 기차가 연결되면서 구리제련소가 이곳에 생기게 되었다.

1921년 이 지역이 소비에트 아르메니아가 되었고, 1930년 도시계획이 수립되었다. 1935년 알라베르디라는 도시 이름이 생겨났고, 1938년 도시화가 진행되어 노동자를 위한 공동주택이 들어서게 되었다. 1946년 중요한 산업지대가 되었고, 1959년 주민수가 17,000명에 이르렀다.

알라베르디의 전성기는 1970년대다. 인구가 23,000명을 넘었고, 일자리도 수천 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1989년 소련이 붕괴되고, 1991년 아르메니아가 독립하면서 광산과 제련소가 사유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시장과 경쟁력을 잃었고, 현재는 500개 정도의 일자리만 남아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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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잔 ⓒ 이상기


알라베르디를 지난 버스는 로리(Lori)주의 주도 바나조르(Vanadzor)를 지난다. 이곳에서 방향을 동남쪽으로 틀어 큰 고개를 넘으면 타부시(Tavush)주의 딜리잔(Dilijan)에 이른다. 딜리잔은 온천휴양도시로 인근 산악지역이 국립공원이어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곳은 해발이 1,500m나 되기 때문에 여름의 낮 최고 기온이 24℃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름에 문화, 예술, 체육, 교육 관련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크파트 수도원 #성 느샨교회 #성모교회 #성 그리고르교회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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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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