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달빛, 은근함이 좋다사이트 PIixabay가 제공하는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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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달아 밝은 달아'의 한글 채록으로 가장 오랜 것은 1926년에 나온 엄필진의 <조선동요집>에 들어있다. 제목은 '달'이라고 했는데, 가사는 '달아달아 밝은 달아'의 것이다. 표기를 요즘 것으로 정리하여 아래에 적는다.
달아달아 밝은달아
이태백이 놀던달아
저기저기 저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 엄필진, <조선동요집>, 1926.
달 속의 계수나무로 초가삼간 집을 지어 부모님 모시고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소박한 소망이다. 살고 싶은 집도 초가삼간이다. 고대광실과 다르다. 욕심이 보이지 않는다.
집을 지을 곳은 달이다. 얽매임이 없는 곳이다. 이리저리 얽히고 부딪치는 부모의 일상은 아이 눈에도 복잡하다. 저 멀리 떠 있는 달은 지상과 다른 평안의 빛으로 밝다. 아이는 이런 곳에서 부모님과 천년만년 평온함을 누리고 싶다고 했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의 아이는 욕심없는 소박한 소망을 달 속에 그려냈다. 동화적 상상이다. 동심의 동화적 표출이다. 엄필진은 이 노래를 밝은 달이 중천에 떠올랐을 때 어린이들이 부른다고 했다.
달맞이 노래로 부른다는 것이다. 보름 달빛 아래 이 노래를 부르면 동화적 상상은 더욱 살아날 것이다. 아이와 달의 정서적 교감도 증대될 것이다. 어느덧 노래도 자신의 언어가 되고 소망도 자신의 것이 되어 달에게 기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달아달아 밝은 달아'는 아이들만 부른 것이 아니다. 1930년대 풍속을 적은 책 <조선의 향토오락>은 경기도 양주에서 추석 때 여자들이 달맞이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추석 때 '강강술래'를 놀면서 이 노래를 '강강술래' 가사로 끌어다 부르는 일도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어느 곳이고 예전의 달맞이 이벤트는 처녀나 새댁 등 젊은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런데 어린이와 달리 젊은 여성들은 이미 현실적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의 정서 또한 동화적 감성보다는 현실적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도 달맞이 때면 이들도 이 노래를 소환해 불렀다. 달과의 교감을 경험한 동화적 감성이 젊은 여성들의 가슴 어딘가에 원초적 정서로 늘 자리해 있음이 아닐까? '달아달아 밝은 달아'가 가장 오랜 달노래로서 가사 변이 없는 전승을 보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하다.
예부터 우리는 달에게 소원을 말했다. 달을 바라보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이런 전통의 맥은 현재 우리에게도 이어져 있다. 추석이 되면 매년 곳곳에서 각종 달맞이 이벤트가 벌어지는가 하면, "다 들어줄 것 같은 달맞이 명소", "보름달 소원빌기 좋아요" 등의 타이틀을 단 글들의 작성과 유통이 활발해진다. 지금 '기상청 날씨누리'도 올 추석 전국의 달맞이 명소를 안내하고 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원초적 소망은 무엇일까? 현실성이 없어도 좋다. 동화적이어도 좋다. 올 추석 보름달을 맞이하며 각자의 상상으로 마음 속 소망을 달에게 말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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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면 생각나는 구전동요 '달아달아 밝은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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