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음악> 모바일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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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유독 좋아했던 이유는, 신지혜 아나운서의 매력적인 목소리 때문이었다. 노련하면서 담백했고, 도회적이면서 따스했다. 긴장을 풀어주듯 깊이 있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1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아쉬웠다. 음악들 사이로 스며드는 군더더기 없는 멘트는 명곡보다도 명품이었다.
헤어질 결심 앞에서 두말없이 배웅해주고 싶었지만, 동경했던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없다는 서운함에 사유가 궁금해졌다. 기획·연출·진행 등 1인 제작시스템으로 운영되어 왔기에 프로그램을 향한 애정과 부침이 태산과도 같을 텐데, 내려놓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별다른 동요없이 절반 이상의 선곡들이 흐른 뒤에야, 안정된 음색으로 하차 이유를 밝혔다. "퇴사하게 되었고, 이유는... 때가 되었다." 덤덤한 소회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이상의 질문이 구차할 정도로. 왜 오랜시간 팬이었는지 체감될 만큼의 깔끔하고 멋진 답변이었다.
평소 라디오 DJ를 존경해온 이유는 묵묵한 일관성이다. 배우는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입듯 변화의 일상이 늘 공존한다. 매번 역할과 시대 상황에 따라 시간여행자처럼 떠나야 하기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하는 것이 과제이다.
반면에 라디오 DJ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다. 아무리 업이라 해도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컨디션으로 임한다는 것은 보통의 내공과 인내심으론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을 일탈없이 붙잡아 둘 수 있었던 것은 청취자와의 소통 덕분이 아니었을까.
"엄마는 라디오를 왜 좋아해?" 평생 옆에 끼고 라디오를 들어오신 엄마에게 물어봤다. "예쁘게 말하는 법을 배워." 이어 TV 없이는 살아도 라디오는 있어야 된다 하셨다. 엄마는 외출하실 때도 라디오를 끄지 않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음악과 함께 나지막히 반겨주는 사람소리가 온기처럼 훈훈하다. 라디오는 나이만큼 채워진 적막함을 덜어주는 고마운 벗이다.
눈 뜨면 성장하듯 무수히 쏟아지는 미디어콘텐츠의 침공 아래 라디오의 위기를 잠시 걱정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영원한 딜레마인 고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라디오는 존재할 것임을 깨닫고 근심을 접었다.
25년보다, 더 오래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