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시작된 '책임감' 레퍼토리는 학년과 담임이 바뀌어도 '붙여넣기'한 것처럼 동일하게 쓰여져 있었다.
고정미
이유야 어쨌든 간에 선생님들의 무책임하고도 일관된 '책임감' 발언은 결과적으로 성장기 내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게 유일한 칭찬이자 장점인 줄로만 알고 어디서든 '책임감' 단어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고 심장에 'On air' 불이 켜졌다. 맡은 일은 끝까지 완수하고자 늘 전의를 불태웠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느 순간 구석 아닌 센터로 나와 학예부 일을 도맡기 시작하더니, 대학에서는 연극연출까지 하며 장학금을 받고 졸업하게 되었다.
사회에 나와 택한 배우라는 직업은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필요로 했다. 주어진 대사를 숙지하여 현장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할 임무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으며, 매번 인물이 처한 상황을 관객에게 이해, 공감시켜야 했기에 책임이 다다르지 못했을때는 자책감에 밤새 뜬 눈으로 이불을 뒤척여야 했다.
아버지가 파킨슨 판정을 받고 4년간의 투병 끝에 급성위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병상을 지켰다. 장례를 치른 지 6개월도 안 되어 어머니마저 폐절제수술을 받으셨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출연했던 영화 <항거>가 개봉되었는데 수술 전날까지 인터뷰 스케줄만 진행하고 엄마와 함께 병원에 들어갔다. 친구가 그때를 함께 회상해 주며 힘들지 않았냐 물어도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돌이켜봐도 심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버거웠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정말이지 살아오면서 책임감을 지키겠다고 아등바등 애써본 일도 없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거라니까, 단순히 믿는 구석 삼아 힘들이지 않고 이행해 왔던 것이다.
현재 지키고 있는 책임감은 작년 봄부터 난생처음 입양한 반려견에게 하루 두 번의 산책을 거르지 않는 것이다. 유튜버들의 한결같은 당부가 산책 두 번이 기본이란다. 강아지한테 산책은 생존이라고, 끝까지 '책임감' 있게 지킬 수 있겠냐며 거듭 물었다.
엄마가 구피 치어 50여 마리를 페트병에 담아 집에 오셨던 그날부터 팔자에 없는 물고기 집사가 된 지도 어언 7년차다. 매일 먹이 주기, 어항 청소도 어김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 숨쉬는 생명체 앞에서 책임감보다 앞설 것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환수하는 동안 찾아오는 물멍 타임은 또다른 낙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번외로 한 달에 한 편씩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있는 에세이도 어느 순간 취미에서 책임감으로 옮겨져 버렸다. 간헐적 아닌 주기적으로 글을 써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 독자분들이 생겼음을 인지한 순간, 낱말, 조사, 문장 하나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마감날짜 넘겨 폐 끼치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며 거듭 다짐한다.
선한 파장을 일으키는 다정한 말
이쯤되면 '책임감'이 다소 부담스러운 덕목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책임감은 그저 스스로 정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잘 지키는 것일 뿐이다. 인생의 절반을 넘기면서 세상의 잣대와는 상관없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언 이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 계기는, 분명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롤링페이퍼 같은 책임감 발언 때문이었다. 별 뜻없이 적어놨어도, 설사 마음에 없던 빈 말이었다 할지라도, 좋은 말과 칭찬은 분명 상대방에게 적지 않은 선한 파장을 일으킨다. 어린 아이에게는 삶의 중요한 구심점이 되기도 하고, 성인에게는 잠시 그 말을 붙잡아 믿고 싶을 정도로 위안이 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지난날 무심코 뱉었던 말들에 대해 되짚어 본다. 진심을 다한 조언이랍시고 되려 상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마음에 다다르진 못했어도 습관처럼 뿌렸던 말들이 되려 나았던 것은 아닌지. 걱정마. 잘 될 거야. 널 믿어. 응원해. 등등.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직업은 배우이며, 끄적끄적 글쓰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공유하기
'맡은 바 책임감이 강함', 이 말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