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저곳을 건너면 용두마을(순천시 별량면)이다.
안사을
벌교읍과 별량면을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면 철길 건널목을 몇 개 건넌다. 다리와 터널 등으로 선형화된 요즘 철도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경전선인데 이 또한 복선화 공사를 거치면서 많이 달라졌지만 이곳의 철길은 여전히 단선이고 마을을 지난다.
결국 잠자리는 벌교읍 한복판이 되었다. 밤새 열려있는 화장실이 딸린 공영주차장이 여럿 있었다. 우리는 둘 다 하지 않지만, '야영 및 취사 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곳에서는 머무르지 않는 것을 나름 원칙으로 한다. 즉 차 안에서 잠만 잘 뿐, 단순 주차와 다름 없는 일명 '스텔스 차박'이지만, 해당 문구가 달려있다는 것은 누군가 주민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이므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눈을 뜨면 곧바로 절경이 펼쳐지는 잠자리는 아니었지만 벌교의 읍내는 과거와 현재가 따뜻하게 공존하는 느낌의 집합체였다. 평점 좋은 식당에서 꼬막 정식을 먹고 한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에 쏙 들어가 잠들기에 충분히 낭만적인 거리였다.
꼬막과 닮은 따뜻한 회색 도시
이른 아침 눈을 떠 잠자리를 정리하고 간단한 세면 후 다시 동네 한 바퀴에 나섰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벌교 시장이었다. 일찍부터 운반 차량에서 꼬막을 내리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분명 장날이 아니었는데 수산물과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이 가득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앗간에서는 꼬순 내가 물씬 풍겼다.
"안녕하세요. 5일장이 여기가 맞나요?"
"여그서부터 쩌그까지가 다 시장이지 뭐."
"근데 오늘 장날이 아닌데도 나와 계시네요?"
"장날 아니라도 걍 나와서 팔지. 심심헝께."
사람을 꼬드기는 호객 행위가 없어서 시장을 구경하는 동안 참 마음이 편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무뚝뚝해 보이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눈인사를 주고받고,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활기와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장 풍경은 참 오랜만이었다. 꼬막을 몇 킬로 더 사갈까 고민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잠시 상의를 하고 다시 전화를 주시겠다며 전화를 잠깐 끊었다. 다시 전화가 와서는, 이제는 할머니가 이가 안 좋으셔서 꼬막을 잘 못 드신다는 소식을 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시장에서 물건을 내다 파시는 저 상인들처럼 정정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시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