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사탑아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Pixabay
나의 감탄어린 말투에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내가 고개를 돌리더니 다소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니까."(후훗)
하마터면 "너니까 이렇게 놀라고 있다"고 말할 뻔 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 기고만장한 표정과 말투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있는데, 완벽한 사진 아래로 반쯤 드러난 사진이 보였다. 역시... 실수도 다양한 방식으로 한다 싶어 말을 이었다.
"밑의 사진은 여전한데?"(ㅋㅋㅋ)
내 말에 자신이 포스팅한 다음 사진을 물끄러미 보던 아내가 잠시의 침묵 후 더 해맑은 모습으로 말했다.
"나니까. 그럴 수도 있지."(후후훗)
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당당함은 둘째 치고 이런 반응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내는 근 20년째 사진을 찍으면서도 수평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저 기록하는 것에 그리고 선명한 사진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스스로는 제법 수평을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그녀의 사진 찍기는 멈춤 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내는 결과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는 결과에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평가함에 있어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 아내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원동력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아내 덕에 마음이 편해지는 치트키를 획득했다. 말 한 마디로 마음이 너그러워질 수 있다니. 지금까지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과 '저런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데 서슴이 없었다. '언제나' 효심 지극한 아들, '언제나' 다정한 남편, '언제나' 인자한 아빠, '언제나' 친절한 타인이고 싶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실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나는 한결같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6살 아들과 과자 하나로 티격태격하지 않았나. 더 나아지려는 노력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종종 기대를 저버리는 나에 대한 지나친 책망이었다.
때때로 기운이 빠졌고 냉소적으로 변했다. 그 순간 나는 원하는 모습에서 두세 걸음 더 뒤로 밀려 났다.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했던 자신을 조금은 더 너그럽게 대했어야 했다. 사진 균형 맞추기는 몰라도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아내 덕분에, 조금 더 너그럽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지금이라도 배워서 다행이다.
그럴 수도 있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