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
이 책은 세월호의 출생과 죽음을 다루었다. 세월호와 관련해 무수히 많은 책이 출간되었지만, 세월호를 인격화해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룬 텍스트는 적었다.
그림책이니 가능한 상상이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세월호라는 인격체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이기심과 쓸모를 위해 희생당한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풀어낸 것이다.
세월호의 첫 이름은 나미노우에호였다. 1994년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그때 이 배의 이름이 붙여졌다. 이 배는 한국에 오기 전 일본의 남쪽 바다를 18년 넘게 오고 갔다. 나미노우에호는 오랜 시간 일본 남해를 떠돌았기에 잠시 쉬어야 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웃 나라인 한국으로 팔려 가 수명 연장을 위해 개조되었다.
그의 몸은 "함부로 뜯기고 떼이고 덧붙여졌"고 선박에 필요한 안전 검사도 허술하게 진행되었다. 이러면 안 되었지만, 나미노우에호는 인간의 쓸모를 위해 무참히 부서지고 붙여졌다. 그 이후로 '세월호'라는 이름을 얻었고 버겁고 힘겨운 운행을 이어나가야 했다.
세월호는 매번 힘겨운 운행을 견뎠다. "늘어난 화물과 승객을 힘겹게 싣고" 인천과 제주를 오고 갔다. 이 과정에서 배는 위험하게 "너무 쉽게 기울"기도 했고 "힘겹게 바로" 서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그날이 오기 전 나는 끊임없이 불길한 징조를 보내 구조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징후나 신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쓸모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습관처럼 침묵 되었다.
"내 안에서 수많은 꽃들이 졌어"
세월호는 간절한 목소리로 쉬고 싶다고, 운행하기에는 더는 자신의 몸을 굴리기 힘들다고 애원했지만, 그 누구도 이 흔들림에 반응하지 않았다. 끝내는 승객 476명과 과적 화물을 실은 채 제주로 향한다.
독자들도 모두 알고 있겠지만 세월호에 탄 325명은 수학여행을 위해 배를 탄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배는 출발했지만 오래지 않아 일어서지 못하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기울어진다. 끝내는 "작살 꽂힌 향유고래처럼 점점 더 바닷속으로 거꾸러" 지게 된다. 세월호는 말한다. "내 안에서 수많은 꽃들이 졌다"고 말이다.
간략하게 그림책 〈세월 1994-2014〉의 흐름을 요약했지만, 누가 읽어도 세월호가 침몰하게 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세월호'를 인격화함으로써 기울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세월호가 끝내는 일어서지 못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시간을 목격하는 과정은 세월호 자체의 허약함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인간의 쓸모를 위해 세월호가 희생당한 존재로 다가온다.
이 텍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동작가 문은아의 짧으면서도 강력한 서정적인 문체이다. 더불어 만화가 박건웅이 그린 그림 역시 애잔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런 힘의 출발은 세월호의 아픔을 이해하고 느껴보려는 두 작가의 선한 마음이 투명하게 어울려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인격화된 세월호는 승객 대부분 잃어 버리고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수면 위로 처절하게 올라오게 되는데, 아래의 인용 글을 읽어보면 학생들을 지키지 못한 세월호의 무게와 아픔이 느껴진다.
"나는 세월호다. 목적지에 닿지 못한 여객선. 놓쳐 버린 승객들을 기다리는 여객선."
이 고백 이후, 언어 없이 그림이 펼쳐지는데, 그 장면은 봄날의 노란 제주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