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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학자금 대출 갚으려 나선 노동서 마주한 것

[서평] '장소'와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 책 <오리들>(김영사, 2004)

등록 2024.04.03 10:02수정 2024.04.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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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가, 전에는 없던 그런 걸 생기게 한다는 거지."(376쪽)
 
430쪽 분량의 장편 그래픽 노블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을 고백의 형식으로 무장한, 단단하고 촘촘한 책이었다.

두꺼운 책이 무조건 의미 있다고 볼 수야 없지만, 적어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작가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노바스코샤주에 있는 캐나다 동부 연안의 아름다운 섬 케이프브레턴을 떠나, 캐나다 서부에 있는 앨버타 오일샌드로 향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값졌다.


인간에게 빚이 대체 무엇이기에 젊은 청년이 이리도 긴 여정을 떠나 돈을 벌어야만 했을까. 이런 궁금증으로 인해 무사히 그녀가 긴 여정을 잘 끝마치기를 바라면서 며칠 동안 책을 붙잡고 있었다. 그 작품은 바로 케이트 비턴의 〈오리들〉(김영사, 202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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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 표지 ⓒ 김영사

 
이 작품의 주인공 케이티 비턴은 캐나다 동부 연안의 아름다운 섬에서 먹고 자랐다.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했고 끝내는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문학사 학위로는 고향에서 취직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자금 대출 비용을 갚을 수 없었다. 케이티가 성장한 지방 도시에서는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다른 도시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케이티는 험난한 앨버타 북부의 오일샌드, 일종의 석유 채굴장으로 향한다. 이런 다짐은 이 작품집에서 '선택'이라기 보다는 '의무'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런 사연은 케이티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고향에 머무른 채 익숙한 것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하는 캐나다 지방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아가 캐나다의 이런 사연은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젊은 청년들의 모습과 일정 부분 닮아있기도 하다. 케이티는 말한다. 
 
"스물한 살쯤 나는 알게 된다. 어떤 일자리든 좋은 일자리이며, 형편없는 일자리마저 좋은 일자리라는 것을,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운이다."(12)

하지만 케이티가 떠나온 '이곳(앨버타 오일샌드)'은 오묘한 공간이자 장소였다. 노동의 강도가 세더라도 일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곳이 아니었다.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무작정 몸을 실은 케이티는 낯선 환경에 도착하자마자 어리둥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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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 44~45쪽 ⓒ 김영사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노동 강도가 심했던 탓에 상대적으로 오일샌드에서는 남성 근무자가 많았고, 그곳 공구실에서 일해야만 했던 케이티는 이들과 부딪치면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일상처럼 느껴야 했다. 
 
"진짜 예쁠 수도 있고, 캠프 기준으로 예쁠 수도 있고, 바깥세상에서 4점짜리라면, 여기서는 8점이 되는 거야"(172)

하지만 이 모욕은 공구실에서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곳에서 일하는 남성들은 하나같이 케이티에게 성추행에 가까운 말을 서슴없이 한다.

케이트는 이런 상황에 당황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당당히 직장 상사를 찾아가 따져 보지만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감수하라는 말만을 듣는다. 케이티는 어떻게 해서라도 빚을 갚아야 했기에 이곳에서 이런 수모를 견딘다.
 
"여긴 왜 우리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고향 사람들요. 왜 우린 여기 이렇게 많을까요. 왜 여기죠?"(224)

여기까지 확인해 보면 〈오리들〉은 남성들에게 짓궂은 시선과 대우를 견디며 빚을 갚아가는 한 젊은 지방 여성의 처절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텍스트가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시선을 넘어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일하는 남성들은 케이티와 같은 이유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곳에 몰려든 사람들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했던 것이다.

마주한 상대의 양면적인 모습, 그럼에도 이해가 갈 때 

험난한 곳에서 일하는 남성들이 지극히 부조리한 것은 맞지만, 이들이 고향을 떠나오기 전에는 지금처럼 모질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케이티의 의견이다. 그곳에서는 "외로움과 향수병과 지루함과 여자가 드물다는 점"(375)으로 인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 발언을 하는 남성들을 옹호하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무례함을 용서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으로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케이티는 '그곳' 내부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부조리한 경험을 알려달라는 어느 신문사의 인터뷰에 참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질 가십거리나 이슈몰이만을 하려는 기자를 비판한다. 그 곳에서의 가슴 아픈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가, 어쩌면 조회 수만을 위해 케이티의 사연을 소비하려 한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문제의 본질을 온전히 숙지하지 못하는 성의 없는 시선이다. 
 
"내가 그들을 변호하는 건가? 모르겠어. 다만, 그래도 그들은 내 사람이야, 최악의 모습일지라도 그 기자보다는 그들이 나와 더 닮은 꼴이야" (377)

케이트 비턴의 〈오리들〉은 이처럼 한 개인의 서사를 통해, 2005년부터 2008년 동안 '그곳'에서 2년 동안 지냈던 경험을 통해 캐나다 서부에 있는 앨버타 오일샌드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로서 오해를 수정하고 '(비)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더 나은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그곳'에서의 '노동'에 대한 '존중'과 '인정'과 '이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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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들> 329쪽 ⓒ 김영사

 
역으로 이런 존중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의 시선이 더해져야 함을 이야기한다. 오일샌드에서 벌어진 수많은 오리들의 떼죽음에 더해, 멈출 수 없는 환경오염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소외된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종을 소외시키는 역설적인 텍스트인 셈이다. 물론, 몸뚱이 밖에 없는 노동자들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겠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공유될 수도 있습니다.

오리들 - 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에서 보낸 2년

케이트 비턴 (지은이),
김영사, 2024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문종필평론가 #오리들 #김영사 #케이트비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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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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