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더불어민주당 경기 광명을 김남희 당선자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선거 유세 중 가장 재미있고 좋았던 순간을 소개하며 자전거를 탄 중학생이 “김남희 화이팅”을 외치고 지나가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유성호
두 아이의 엄마. 김 당선인이 스스로를 소개할 때마다 빠트리지 않는 문구다. 서울대 법대 출신 변호사로서 '억대 연봉'을 받으며 대형 로펌을 다니다 돌연 시민단체로 직을 옮겨 세간을 놀라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상교수로 일하며 요양보호사나 간병인 등 노동자를 대변해왔던 이력도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소개에 크게 앞서지 않는다.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평생의 화두로 정한 당선인의 다짐 때문이다. 그 마음으로 당 내 경선에서 현역 양기대 의원을 제쳤고, 본선에서도 국민의힘 전동석 후보를 약 20%p 차이로 따돌렸다.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그는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도 청년 일자리와 주거를 거론하며 저출생 문제를 정조준했다.
독특한 건 '서울대 출신'인 그가 저출생의 근본 원인을 학력주의를 위시한 '서열화 사회'로 지목했다는 사실이다. 김 당선인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너무 힘든 사회가 됐다"며 "양육비가 증가한 건 한국의 대학 서열이 심각해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한민국 수능응시생 30% 이상이 재수를 선택하는데 여기 드는 비용이 한 달에 300만 원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김 당선인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책에서 해법을 찾았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은 대학 서열에 따라 예산을 다르게 투입해왔다"며 "어떻게 보면 국가 재정이 대학 서열화를 더 공고하게 만든 셈인데 국가가 정책적으로 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당선인과의 일문일답.
"중학교 내 '김남희 팬클럽' 생겼다"... 당선인의 인기 비결
▲ 국회 입성한 김남희 당선자 "저출생 정책, '타당성' 따지지 말고 다 해봐야" ⓒ 유성호
- 22대 국회 입성을 축하한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20년 동안 변호사이자 시민사회 활동가로 복지 분야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한국 사회에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한 삶을 위한 여러 공익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고, 공익 소송을 진행해왔다. 그 경험을 살려 민주당 영입인재가 됐고, 광명시민들의 많은 지지 덕분에 당내 경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또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 당선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지난 2월 29일 밤, 당에서 광명을 전략경선을 하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그로부터 4월 13일까지 하루도 못 쉬었다. 어제가 처음 쉬는 날이었다. 매일 미친듯이 달려오면서 생각나는 장면들이 많지만 그 중 두 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경선에서 승리했을 때다. 너무 놀랐고, 감격했다. 경선 상대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 오신, 관록 있는 정치인이었는데 난 정치 신인 아닌가. 당 결정으로 갑자기 광명에 가게 돼 그런 결과(경선 승리)를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광명시민들이 '새로운 정치를 보고 싶다'거나 '당의 결정이라면, 이 사람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믿어주셨던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선거운동하면서 유권자들의 변화가 눈에 보였던 점이다. 처음 유세현장에 나갔을 때는 인사를 해도 반응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하루 달라지더니 막판에는 유세차에서 인사를 드리면 반 이상이 손을 흔들어주셨다. '엄지척'도 해 주셨다. 그때 승리를 예감했다. 또 선거운동 기간 중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줬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생들이 와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거나, 중학생들이 와서 '우리 학교에 김남희 팬클럽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 인기 비결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나는 광명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선거 기간 동안 계속 말했던 게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메시지가 학부모들이나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다가갔던 게 아닌가 싶다."
- '김남희표 1호 법안'으로 고민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공익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이미 법안을 3개나 만들었다. 아마 그중 하나일 듯하다. 첫 번째는 간병인들이 노동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간병인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근무 과정에서 다치기도 하고 병에 감염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환자의 보호자가 직접 고용해 '개인 고용인'으로 간주돼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산재보험이라도 적용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게 간병인들의 오랜 요구다. 이 내용의 법은 이미 현직 국회의원께 드렸는데, 아직 발의도 안 됐다. 22대 국회가 열리면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또 다른 2개 법안은 뭔지 궁금하다.
"노인이나 발달장애인들의 휴대폰 사기 피해가 심각한 만큼 정보통신사업법을 바꿔, 통신사업자들에게 설명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고 싶다. 이번 국회에서 강선우 의원과 함께 추진을 했었는데 발의는 됐지만 본회의 통과가 안 됐다. 그밖에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고치고 싶다. 현행법상 돌봄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 잡아야 저출생 해결 가능"
- '저출생' 문제는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이었던 과거부터 당선인의 관심사였다. 박근혜 정부의 저출산 대책의 '패인'을 분석한 글도 봤다. 그런데 현재 저출생 상황은 당시보다 악화됐다. 이유와 해법이 뭐라고 보나?
"본질적으로는 청년 일자리와 주거, 교육과 성차별 문제가 저출생을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너무 힘든 사회가 됐다.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데 청년들의 일자리, 주거 문제가 심각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양육비가 증가한 건 한국 대학 서열이 심각해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도 여성에게 부담을 집중시킨다. 결국 여성으로서는 출산과 양육을 포기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특히 최근에는 교육 경쟁과 성차별 문제를 실감하고 있다."
- 당선인에게도 두 자녀가 있어 더 그렇겠다.
"맞다.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에 아이 낳아 키우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주목할 지점은 아이가 어릴 땐 부모들이 힘들어하면서도 아이 낳은 것 자체를 후회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주는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이 낳은 것 자체를 후회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사춘기가 올 뿐더러 아이가 치열한 교육 경쟁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사교육비에 부모도 힘들고 경쟁 스트레스에 아이는 더 힘들다. 그러다 보면 서로 마찰이 커지더라.
양육의 모든 책임과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 되는 구조도 문제다. 아이를 교육시키는 건 엄마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아이를 키운다. 나 역시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인데, 점점 '대한민국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지어 사회가 '노키즈존' 등으로 아동을 혐오하고 있지 않나, 이 모든 걸 알면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나?"
- 마치 저출생의 원인이 '대학 서열화'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맞다. 실은 한국 사회 자체가 굉장히 서열화돼 있다. 그중 하나가 '대학 서열화'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일자리를 갖고 사회적으로 좋은 지위를 차지하는 등이다. 이 현상은 점점 더 공고화돼, 상대적으로 '아래 쪽'에 놓인 사람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아이를 더 높은 서열의 대학에 보내기 위해 극심한 교육 경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승자가 '의대에 입학하는 이들' 뿐이라는 것이다. 그외 대부분의 학생, 학부모들은 교육 경쟁의 패배자가 된다. 대한민국 수능응시생의 30% 이상이 재수를 선택한다는데 이런 나라가 세상에 또 없다. 재수를 하는 데 드는 비용도 한 달에 300만 원 이상이다."
-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 다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가 내세웠던 공약 중에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내용이 있다. 실은 똑같은 제목의 책이 있는데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발전 과정을 '벤치마킹'해, 한국 주요 지역의 국립대에 서울대와 유사한 수준으로 충분한 지원을 하자는 내용이다. 각 국립대를 그 지역 특성화 산업과 결합해 충분히 발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대학 서열에 따라 예산을 다르게 투입해왔는데 이를 바꾸자는 게 핵심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지난해 10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와 대학알리미 공시를 종합한 결과) 지난 2022년 기준으로 서울대 학생 1인당 교육투자비는 약 5800만 원이었지만 연세대는 3994만 원, 성균관대는 3017만 원이 각각 투자됐다. 어떻게 보면 국가 재정이 대학 서열화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책에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라도 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굉장히 동의한다."
- 당선인이 서울대 출신이다.
"그래서 내 역할이, 그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집단적 소멸 상태... 할 수 있는 정책 다 해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