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흥선 대원군이 쓴 글씨로 대방에 걸린 편액이고 오른쪽은 극락보전 전경이다. 현판 옆에 용머리 조각이 보인다.
오창환
흥천사(興天寺)는 원래 유서 깊은 절이다. 1396년 조선 태조의 비였던 신덕왕후 강 씨가 돌아가시자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정릉을 만들고 그 능을 관리하는 능침사로 흥천사를 창건했다. 한양 천도 후 도성안 최초의 사찰이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이 왕권을 승계하자 정릉을 도성밖인 지금의 정릉동으로 이전시켰고 흥천사도 점차 위세를 잃기 시작한다.
명맥을 유지하던 흥천사는 1504년과 1510년의 화재로 폐사되고 만다. 참고로 도성 내 정릉이 있었던 중구 정동도 옛 이름은 정릉동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동명 정리를 하면서 정동이 되었다.
그러나 후대에 신덕왕후 강씨의 위상이 재평가되면서 능을 관리하는 사찰의 필요성이 제기되어서 현재의 위치인 성북구 돈암동에 흥천사가 다시 세워졌고 영·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왕실 사찰의 위상을 갖추어 간다. 고종 때 흥천사는 특히 부흥하게 되는데, 고종 2년인 1865년에 흥선 대원군이 회주가 되어 대방을 중창하고 고종 28년 1891년에 천수관음상을 봉안하는 등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찰 경내에 대처승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2010년까지 조계종과 사찰관리를 두고 갈등을 빚는 등, 사찰이 몰라보게 쇠락하게 된다. 2011년 새로운 주지스님이 오시면서 사찰 내 주택을 이주시키고, 오래된 전각을 해제 복원, 이주된 주택 터에 현대적 법당을 짓는 이후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취재를 마친 후에 주변의 스케쳐들이나 지인들에게 흥천사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흥천사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놀랐다. 하지만 수많은 문화재를 갖춘 매력적인 흥천사가 앞으로는 더 많이 알려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