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인 5월 1일 서울 대학로에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삶과 투쟁을 되새길 터전인 ‘백기완마당집’이 문을 연다.
권우성
"이거 봐~ 윤석열이! 나 알잖아, 내 말 들어."
건물에 들어서기 전 마당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2층 벽면에 낸 창에 큰 글씨로 내건 위 글귀다. 1년 주기로 교체할 예정인 '창 밖의 외침' 전시 공간인데, 부정한 권력을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사자후를 날렸던 백 선생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말이다. 불쌈꾼이 살아있는 듯했다.
1일 마당집에서 만난 양기환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전 기획위원장은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양극화가 심화될 뿐만 아니라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민주주의의 퇴행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라면서 "이 공간은 과거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을 넘어선 현재 진행형이기에 우리가 곱씹어야 할 사회적 의제나 이야기를 창 밖의 외침과 같은 이미지나 문자로 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담쟁이 넝쿨로 온통 뒤덮었던 붉은 벽돌담은 대문만 남긴 채 헐었다. 백 선생은 늘 군부독재 정권과 극우파의 표적이었다. 온갖 해코지를 덜려고 주소만 적혀있었던 문패는 문정현 신부가 새긴 서각 글 '해방세상'으로 바꿔달았다. 백 선생이 꿈꿨던 '노나메기 세상',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과 동의어이다.
1층 전시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방문객을 맞는 20년생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새파랗게 잎이 오른 살구나무. 백 선생은 꽃이 발그스레한 살구꽃을 좋아했다. "양반들은 붉은 빛이 도는 화려한 복사꽃을 좋아했지만, 자연의 빛깔을 닮은 민중의 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말을 들은 신학철 화백이 자기 뜰에 있던 나무의 씨앗을 키워 2005년 이곳에 옮겨놓았단다.
살구나무 밑 새김돌에는 백 선생이 매년 봄이 되면 벗들을 불러모아 신경림 시인의 <월악산의 살구꽃>을 붉은 담장 벽시에 적어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고 적혀있다.
"월악산에서 죽었다는 아들의/옷가지라도 신발짝이라도 찾겠다고/삼십 년을 하루같이 산을 헤매던 아낙네는/말강구네 사랑방 실퇴에 앉아 죽었다 한다//한나절 거적대기에 덮여/살구꽃 꽃벼락을 맞기도 하고/촉촉히 이슬비에 젖기도 하던 것을"(신경림의 시 '월악산의 살구꽃' 중에서)
[옛살라비] 통일꾼, 예술꾼, 이야기꾼, 노동해방꾼의 한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