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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강권에 면허 반납한 89세 아버지, 상실이 크셨나봐요"

아직 운전대 놓을 수 없는 옥천 고령운전자들... 김종진 강사 "면허 없는 생활 위한 대안 있어야"

등록 2024.06.03 11:16수정 2024.06.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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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역인 충북 옥천의 청소년, 자녀를 양육하는 주부, 면 지역 주민, 고령운전자 등을 만나 이들의 생활 속 이동권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5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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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 병원 갈 일이 종종 있어서 운전해요. 갑자기 아프면 직접 운전하는 것만큼 빠른 게 없으니까. 응급차 부르기엔 애매한 상황도 많고요." (권광천씨)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군북작은도서관에 모인 이종태(군북면 자모리, 81), 권광천(군북면 이백리, 83), 한용구(군북면 이평리, 80)씨가 조그마한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고, 모니터 속 강사의 질문에 반응하며 집중하는 모습인데... 그 곁을 지키는 한 사람이 있으니, 디지털배움터 옥천팀 디지털전문강사 김종진(52)씨다. 오전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1시 30분부터 3시까지, 벌써 꽤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렀다. 이들이 모인 것은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한 온라인교육 때문이다.

김종진씨는 3년 전부터 옥천에서 운전면허증 갱신 온라인교육을 듣는 어르신들을 돕고 있다. 개인 디지털 장비를 활용하기에 한 번에 3명이 도울 수 있는 최대 인원으로, 도로교통공단 교통안전 교육센터 홈페이지 회원가입부터 로그인, 강의 수강 후 수료증 발급까지 손수 그가 절차를 안내하며 어르신들의 편의를 돕는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대전 동구의 운전면허시험장 혹은 충북 청주의 운전면허시험장에 직접 찾아가 교육을 들어야 했을 테다. 디지털 기기가 익숙하지 않은 80대 노인에게 온라인교육을 수강하기란 너무나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3년 전 시작한 봉사

김종진씨가 운전면허 갱신을 앞둔 어르신들을 돕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다. 4년 전 옥천으로 이주해 디지털배움터 충북사업단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여러 어르신을 마주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이들에게 키오스크,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활용법을 교육하면서 운전면허증 갱신의 어려움에 공감하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만 7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는 3년에 한 번씩 운전면허증을 갱신해야 해요.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해 치매선별검사를 받고, 현장교육 혹은 온라인강의로 교통안전교육을 수료한 후 경찰서 민원실에 가서 갱신 신청을 해야 하죠."

안전한 운전을 위해 필요한 절차이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고령자에게 큰 장벽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온라인강의를 수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르신 혼자서는 힘들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전자기기를 갖춘 어르신부터가 드문걸요(웃음)."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김종진씨는 직접 포스터를 만들고 옥천경찰서 내부에 붙여 고령운전자 면허갱신 온라인교육을 도와드리겠다며 홍보했고, 경찰서 민원실에서도 그에게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의 인적사항을 알려주며 협업했다. 그렇게 지난해에만 그가 도운 어르신의 수만 150여 명이다. 한 번에 세 명이 최대 인원이니, 1년에 적어도 50차례를 다닌 셈이다.

"보통 옥천읍에서 교육했죠. 옥천군 지원을 받는 교육이 아니어서 장소 섭외, 기기 사용 모두 스스로 해야 해요(웃음). 안정적인 와이파이와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면 좋죠. 노인복지관 빈 강의실이나 옥천다목적회관 주민정보화교육장을 주로 이용해왔고 그동안 일주일에 3~4번, 하루에 최대 두 번까지 다녀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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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강사 ⓒ 월간 옥이네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청산·청성면, 영동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고. 김종진씨의 도움이 절실한 고령 운전자들이 이토록 많은 것은, 농촌에서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놓을 수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김종진씨 역시 '농촌에서는 어르신들이 가능한 건강을 잘 유지해 운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다. 


"농촌 어르신들을 보면 농사일을 하면서 자차를 사용할 일이 참 많으시죠. 면 지역에서는 버스가 들어오지 않거나, 있더라도 배차 간격이 2시간 이상인 곳이 대다수고요. 이런 상황에서 면허를 반납하는 것은, 어르신의 '두 발을 뺏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해요." 

옥천군을 포함해 전국 160여 개 지자체에서는 고령 운전자에 대해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옥천군에서는 만 70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할 경우, 지역상품권인 향수OK카드 3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과거 지역상품권 10만 원을 지급하던 것에서 대폭 늘어난 혜택이지만 그럼에도 선뜻 반납을 강권하기 어렵다는 김종진씨다. 

"물론 건강이 나쁘셔서 운전이 위험하시다면 그만하셔야죠. 하지만 어르신들의 상황과 어려움에 좀 더 공감하고, 면허 없이도 건강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대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봤던 '90세 어르신의 운전 사고'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느꼈던 충격을 이야기했다.

"90세 어르신이 노래교실에 자차를 이용해 다녀갔다가 사고가 난 경우였죠. 잘못이 분명한 것은 맞지만, 댓글이 정말 살벌하더라고요.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만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기에 앞서 노인이 운전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직은 운전면허 필요해

면허 갱신을 위해 이곳을 찾은 이종태·권광천·한용구씨 역시 여전히 운전대를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사는 이평리에서는 버스 타려면 1km는 걸어가야 해. 면사무소까지 나오는 것도 차 없으면 어려운 일이에요." (한용구씨)

"각종 꽃나무와 약초를 재배하는데, 농사일 하려면 짐 실어 날라야 하고 밭도 집에서 좀 떨어져 있으니 이동할 때 차가 없으면 불편하죠. 거의 마을 왔다갔다 할 때만 운전하지 다른 데는 나가질 않아요." (이종태씨)

"나는 아내 병원 갈 일이 종종 있어서 운전해요. 갑자기 아프면 직접 운전하는 것만큼 빠른 게 없으니까. 응급차 부르기엔 애매한 상황도 많고요." (권광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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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모인 것은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한 온라인교육 때문이다. ⓒ 월간 옥이네

 
권광천씨가 거주하는 이백리는 대전과 가까워 옥천 시내버스와 대전 시내버스가 자주 정차하는데, 그는 이용 요금에 차이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옥천 버스는 그래도 노인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대전 버스는 요금을 내야 하거든. 우리 마을은 하루에 대전 버스가 10대, 옥천 버스가 3대 서요. 버스 수는 대전 버스가 훨씬 많은데 그거 타려면 요금을 내야 하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있지요." 

김종진씨는 2년 전 면허를 자진 반납한 89세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2년 전 89세에 면허를 반납하셨어요. 본래 운전을 직업으로 하셨던 분이라 면허 반납이 특히나 크게 다가오셨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신체 능력이 자연히 떨어지게 되니까, 위험한 상황이 생기기 쉽죠. 그런 일을 겪은 뒤에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반납을 강권해 결국 반납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큰 상실로 다가오시는 듯했어요." 

1시간 30분가량의 안전교육이 끝나고, 이종태·권광천·한용구씨의 교육 이수 수료증이 화면에 뜬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펴며 환하게 웃는 세 사람이다. 

"이제 다 된 거여? 아유, 선생님 고마워요. 덕분에 교육 들었어."
"묵혔던 숙제 다 끝낸 기분이네. 이제 경찰서 가서 면허 갱신만 하면 돼요."
"고마워요. 이제 3년 뒤에 또 들으면 되겄네!" 

이들의 말에 김종진씨가 "그때까지 건강하셔야지"라며 환히 웃어 보인다. 농담처럼 '3년 뒤'를 다시 기약하지만, 이들 마음 속에도 면허 반납에 대한 마음은 있다. 

"이제 2~3년쯤 지나면 또 모르지. 그래도 지금은 할 만하고 또 때때로 필요하니까요. 남은 생애 건강하게 지내다가 때 되면 반납해야지요." 

운전대 잡지 않고도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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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권광천·한용구씨와 김종진 강사 ⓒ 월간 옥이네

 
고령자의 운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운전면허 반납 제도. 농촌에서 안전사고도 예방하고, 노인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차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교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제도 역시 다양한 대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버스가 좀 더 곳곳으로 다녔으면 좋겠네요. 특히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정말 다양한데, 셔틀버스가 면 지역에도 구석구석 다니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봐요.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교통편이 없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고령운전자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운전면허 갱신 제도 자체의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갱신 절차 중 하나로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능력을 측정하는데, 이때 좀 더 확실하게 검사를 하는 것도 중요하죠. 판정 결과가 정상이어도 실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종종 마주하거든요. 운전 자체를 막는 방법도 있지만, 고속도로나 야간 운전 등을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하죠. 이런 온라인교육의 어려움도 고려해줘야 할 테고요." 

김종진씨의 바람처럼 무리해서 운전대를 잡지 않고도 이동권이 보장되는 농촌이 되기를,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월간옥이네 통권 83호(2024년 5월호)
글·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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