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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를 대표하는 색으로 '번트시에나'는 어떨까

[나주 사격대회 여행 2편] 영산강 등대와 공간 자체가 감동적인 노안성당

등록 2024.06.17 10:35수정 2024.06.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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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나주 금성관에서 작은 궁궐을 상상해 봅니다 https://omn.kr/28ywx에서 이어집니다. 
 
 강바람을 맞으며 그린 영산포 등대. 등대는 펜으로만 그리고 배경은 색연필로 채색했다.
강바람을 맞으며 그린 영산포 등대. 등대는 펜으로만 그리고 배경은 색연필로 채색했다.오창환
 
영산포 등대

지난 6월 9일. 오전에 홍범도장군배 사격대회를 참관하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영산포 홍어거리로 갔다.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비릿하게 삭힌 홍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홍어거리를 거쳐 영산강 등대를 그리러 갔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은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물자와 문화가 교류하던 문명의 길이었다. 특히 육로가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수로는 고속도로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나라에 바치는 세금도 이 물길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영산강은 나주평야에서 나는 물산을 수탈하는 지름길이었다. 1915년에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왕래하던 선박들의 이정표로 등대를 세웠으며 이 등대는 영산강의 수위를 관측하고자 역할도 하였다. 영산포 등대는 1989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이제까지 우리나라 강에 설치된 유일한 등대다.

영산포 등대는 흰색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인데, 원통에 수위를 측정하는 눈금이 있다. 뒤쪽 축대는 모자이크로 영산강 전경이 그려져 있으며 등대 바로 앞에는 황포 돛배를 타는 선착장이 있다. 등대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용해서 인지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왼쪽은 영산도 등대 전경, 오른쪽은 나주시 도시재생사업의 중심지인 나주 정미소.
왼쪽은 영산도 등대 전경, 오른쪽은 나주시 도시재생사업의 중심지인 나주 정미소.오창환
 
나주의 색은 번트시에나

나주는 식민지 시대에 수탈의 전진기지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근대 문화유산이 많다. 게다가 도시가 한동안 침체기를 거쳤기 때문에 개발의 광풍에 비켜서 있어서 오히려 보존이 잘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주 금성관 바로 근처에 있는 나주정미소는 1920년경부터 쌀을 도정하는 시설이었다. 또한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나주지역 학생들이 항일운동을 모의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점점 기능을 상실하고 방치되어 도심의 흉물로 전락했다.


나주의 도시재생주민협의체는 나주시와 함께 나주정미소 재정비에 들어갔다. 쌀을 찧는다는 의미인 정미소(精米所)에서 나주의 인정(情)과 맛(味), 웃음(笑)이 피어나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정미소(情味笑)로 이름을 바꾼 정미소는 나주시민의 전시공간이자 교육공간으로 나주시 도시재생 사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위 사진은 엣 나주 경찰서 전경이다. 아래 사진은 금성관 바로 앞에 있는 금남금융조합 건물이다. 붉은 갈색 건물이 인상적이다.
위 사진은 엣 나주 경찰서 전경이다. 아래 사진은 금성관 바로 앞에 있는 금남금융조합 건물이다. 붉은 갈색 건물이 인상적이다.정미영/Meridian

내가 나주 정미소에 들렀을 때는 주민들이 한참 연주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정미소 벽을 보면 붉은 갈색의 벽돌색이다. 정미소 건물도 그렇지만 나주의 근대 건축물들을 보면 하나 같이 붉은 갈색이다. 대표적으로 나주 경찰서, 또 금성관 바로 앞에 있는 금남금융조합 건물 등이 모두 비슷한 붉은 갈색이다.

수채화 색으로 보면 번트시에나(burnt sienna)라는 물감이 있다. 이탈리아의 시에나 지방의 황토를 구워 만든 색에서 온 붉은 갈색이다. 오래된 벽돌 건물을 채색할 때도 많이 쓰고 미묘한 색이라 립스틱 색으로도 쓰인다.


번트시에나야말로 나주의 색이 아닐까. 남도의 비옥한 토양은 붉은색이다. 그 색을 보고 자란 나주 사람들이 붉은 번트시에나 색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갈색 기가 있어서 품위 있고, 붉은 기가 있어 열정적인 번트시에나를 나주를 대표하는 색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안 성당 

정미소도 돌아본 후 마지막으로 나주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노안면 이슬촌 마을에 있는 노안성당이다. 나주시내에서 노안 성당을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한데 배차간격이 너무 길어서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비 15000원 거리다.

이슬촌 마을 입구에서 내려서 언덕길을 올라가면 성당이 나오는데, 올라가면서 보이는 마을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노안성당은 1927년에 건축된 성당으로 우리나라에서 20번째 지어진 천주교회다. 1957년에 증축을 하였고 2002년에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 중 나주를 점령한 북한군 장교가 성당을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병사들이 불을 지르려고 가는데, 언덕 위로 보이는 성당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병사들은 다른 병력이 벌써 불을 질렀구나 생각하고는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고 한다. 이후로 노안 성당은 기적의 성당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불태우러 갔던 병사가 번트시에나 색 건물을 불타는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인데, 성당을 방화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병사가 차마 성당을 불태우지는 못하고 둘러대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노안성당이 지역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왼쪽은 아름다운 노안성당 전경. 오른쪽은 맨발로 서 있는 성김대건안드레아 동상이다.
왼쪽은 아름다운 노안성당 전경. 오른쪽은 맨발로 서 있는 성김대건안드레아 동상이다. 오창환
 
노안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 자체가 주는 감동에 그만 말을 잊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늦봄의 성당. 마당에 의자를 갖다 놓고 한동안 넋 놓고 그 공간을 감상했다. 뻐꾸기 소리만 요란하다.

아름다운 벽돌 건물 앞으로 잘 정리된 마당과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있었고, 성당 한 켠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조각상이 있었다. 나는 그 조각상을 그리고는 조각상 옆에 있는 돌과 단풍나무 씨를 함께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림을 마칠 때 성당버스 운전기사님이 오셔서 그림을 칭찬을 해주시고, 신부님께도 보여드렸다. 내려오는 길에 이슬촌 공동체 마을 실무자를 만나서 그림을 보여드렸더니 다음에 꼭 다시 한번 오라고 당부를 하신다.

나주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어스름이 깔리는 나주 평야를 바라보았다. 나주라는 도시도 흥미롭지만 역시 사람이 좋은 나주. 이슬촌 마을이 크리스마스 행사로 유명하니 만약 다시 온다면 그때쯤 와야 하나.
       
 성김대건안드레아 동상. 받침돌에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라"라고 쓰여있다.
성김대건안드레아 동상. 받침돌에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라"라고 쓰여있다.오창환
 
#영산강등대 #노안성당 #나주정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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