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호텔 주차장자동차를 먼저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짐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오영식
아테네 외곽의 물류 회사였다. 도착하니 내게 필요한 서류와 주소가 적힌 종이를 주며 도장을 받아오라고 했다. 주소가 적힌 곳은 공증사무소 같은 곳이었다. 차량 반출 전, 그리스 세관에 제출할 서류에 도장을 받아오라는 것.
주소를 찾아갔는데 직원들은 모두 바빠 제 할 일만 하고 인사조차 잘 받지 않았다. 한참 기다리다 일 처리가 끝난 듯한 직원이 있어 다가가 물었지만, 영어를 못하는지 내게 그리스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번역기를 켜봤더니, 아마 내 여권과 비자를 함께 달라는 거 같았다.
나는 '한국인 여행자이고, 비자는 없다'며 여권만 주려고 했다(그리스에서 한국인은 최대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 직원은 내게 그리스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번역기로 내 사정과 필요한 걸 말했지만, 사무소 직원은 이제는 서툰 영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Go to Police(경찰서로 가). Go away!(저리가)"
다시 한번 '나는 여행 중이고 한국인 여행자는 비자가 필요 없다'라고 번역기로 말했지만, 이젠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마저 나에게 소리치며 나가라고 했다. 정말로 비자가 있어야 하는지 물어보기 위해 급하게 가까운 경찰서를 찾았다. 인근 경찰서에 직접 가서 경찰관에게 물었다.
내 자초 지경을 듣더니 경찰관 왈 그 업무는 아까 그 사무실에서 하는 업무가 맞고, 한국인은 비자가 없어도 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리고 왜 나보고 경찰서로 가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내가 그 공증사무소가 공공기관인지 사설 기관인지 물으니, 사설 사무소라고 했다. 그리곤 친절하게 다른 주소를 하나 알려줬다. 나는 아들과 경찰관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갔다. 사무실 문을 열고 위축된 얼굴로 아주 공손하게 물었다.
"저는 한국인 여행자이고…."
내 말을 듣던 직원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손에 있던 서류를 달라고 했다. 건네주니 아무 말 없이 바로 도장을 꺼내 찍어주곤 가라고 했다.
나는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황당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이렇게 간단히 도장만 찍을 일이었나 본데 아까 거기는 왜 그랬지?' 싶어서다. 차량을 맡길 사무실로 돌아가 이 서류를 주니, 담당 직원은 이제 모든 절차가 다 잘 끝났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준 친구 흰둥이와의 작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