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공항에서자동차를 한국으로 먼저 보내고 카이로 행 비행기를 타기 전 아테네 공항에서
오영식
아테네 공항에서 이집트 국적기에 짐을 싣고 탑승했다. 모로코를 여행하며 아프리카를 경험하긴 했지만, 이집트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지리적으로 스페인과 가까워 유럽인들이 자동차로 여행을 많이 하는 모로코는 사실 유럽에 가까웠지만, 현재 이집트는 우리나라의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과 자주 비교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카이로 시내는 모래바람이 불어서인지 온통 뿌옇게 보였다. 걱정과 달리 공항에 내려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출구로 나갈 때였다. 출구 한편에 서 있던 세관 여자 직원이 내게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짐에 드론이 있나요?"
"네. 하나 있습니다."
"드론 있어요?"
"네."
그 직원은 나한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들과 짐을 끌고 직원을 따라갔다. 한쪽 모퉁이에 가니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짐을 꺼내 검사받고 있었다. 나는 내 짐 속의 드론 가방을 꺼내 세관 직원에게 건네줬다.
그 여성은 가방을 한쪽으로 가져가더니 내게 기다리라고 말했다. 한 30분쯤 지났는데도 그 직원이 내 가방을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앉아있기에, "혹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자 그 직원이 말했다.
"조금 더 기다리면 경찰이 와서 드론을 검사하고 당신을 조사할 겁니다."
나는 짐에 드론 하나 있는 게 무슨 큰 죄인가 싶었지만,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쯤 걸리냐고요?"
"한 1시간쯤 걸릴 거예요."
다시 자리로 가서 아들과 기다렸다. 1시간이 훌쩍 지나고 제복을 입은 경찰이 오더니 내 드론 가방을 열어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경찰은 내 249g짜리 소형 드론을 돋보기로 샅샅이 훑어보더니 드론을 다시 가방에 넣고 봉인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아들과 함께 가겠다고 했더니 나만 혼자 따라오라고 했다.
9살짜리 아들을 혼자 낯선 공항에 두고 갈 수 없어 안 된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세관의 여자 직원이 자기가 함께 있겠다며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경찰을 따라나섰다. 그 경찰은 공항을 이리저리 걷다 나를 막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공항 건물 안에 있는 '공항경찰대' 쯤으로 보이는 사무실이었고, 긴 통로 양쪽으론 방이 10개 정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복도엔 짧은 머리에 검은 양복을 입은 20~30대 젊은 남성들이 소파에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나를 인솔한 경찰은 나를 담배 피우는 청년들 사이에 앉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힘찬 경례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알아듣지 못할 대화 소리가 들렸다. 몇 분 후 종이를 들고나온 경찰을 따라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정보경찰 조사실에 올 줄이야
한참을 걷다 보니 이번엔 복도 조명이 모두 꺼진 어두운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한 방문 앞에서 대기하던 경찰이 문에 노크한 후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경례하고 나를 들어오게 했다. 방안엔 책상 위로 간접 조명만 켜진 상태였고, 의자에 앉은 한 남자의 뒤에는 커다란 이집트 국기가 걸려있었다.
눈치를 살펴보니 아까 처음에 들른 곳은 공항의 경찰정도 되는 것 같았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국정원이나 정보 경찰의 간부인 것 같았다. 의자에 앉은 남자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이집트 방문 목적은?"
"여행하러 아들과 둘이 조금 전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 직업은?"
나는 여행하는 동안 퇴직 처리가 되긴 했지만, 국가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 대답했다.
"저는 대한민국 국가공무원입니다."
"공무원? 무슨 공무원입니까?"
"대한민국 국가기관에서 근무했고 환경부 공무원입니다."
내 대답을 듣더니 남자의 인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는 '작은 틈새'를 눈치챘다. 그들이 묻지 않았지만, 바로 이어서 여행 얘기를 덧붙여 말했다.
"저는 아들과 한국에서 타던 자동차를 러시아로 가져가 유럽을 여행하고, 그리스 아테네에서 차를 배에 실어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카이로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여행할 때 차에 있던 드론이 제 짐에 있었는데 이집트에는 가져오면 안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눈짓으로 알았다고 하는 것 같았고, 종이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했다.
"아테네에서 카이로까지는 이집트 국적기를 이용했는데, 짐을 실을 때 드론에 관한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이에 무언갈 빼곡하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종이를 나를 인솔한 경찰에게 주었고, 나는 다시 경찰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소형 드론 하나 때문에 강제 출국까지?
간단히 끝날 줄 알았는데 인솔 경찰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2번이나 더 조사받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아프리카의 한 공항에서 9살짜리 아들이 혼자 2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다'라는 상황 때문에 내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영어를 모른다던 경찰이 내게 영어로 말했다.
"Finish(끝났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경찰을 따라갔다. 평소 나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지 않고 방향감각이 좋은 편인데 그 경찰은 나를 우리가 출발했던 '아들이 기다리는 곳'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데려갔다.
한참 따라가니 출국심사장이 보였고, 그 경찰은 내게 '여기에 줄 서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라고 했다. 얼떨결에 내 여권엔 출국 도장이 찍히게 됐고, 그 인솔자를 계속 따라가는데 이젠 심장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떨리며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강제 출국당하는 건가?'
인솔 경찰을 따라가는데 정말 출국 게이트가 보였고, 나는 불안해서 두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아들이 밖에 혼자 있는데….'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들이 밖에 있는데 이게 뭐 하는 거지? 이집트 여행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항의해야 하나?'
나는 아들 걱정에 너무 두려웠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번역기를 통해 경찰에게 말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번역기를 보더니 그 경찰은 나를 향해 비웃듯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곤 방향을 반대로 틀어 다시 나를 아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줬다.
짐작해 보니 그 경찰은 나를 출국 게이트 앞까지 데려가 겁을 주고 장난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은 채 경찰을 따라가 아들을 만났고,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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