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함평군 불갑산 지구에서 발견된 성인과 어린이의 고무신.
진실화해위원회
연행된 이들은 죽사리 옆 마을인 천마리 대통머리에서 죽임을 당했다. 북한군이 백수면을 점령하고 있던 1950년 8월 6일이었다.
생때같은 자식 둘을 잃은 백수면 죽사리 기와집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남부러울것 없이 살던 집에 자식 두 명에게 변고가 생겼기 때문이다. 입신양명이랄 것은 없지만 지방공무원에 두 명이나 임용돼 마을잔치를 벌인 게 어제 같은 데 말이다.
더군다나 경찰 신분으로 여수에서 근무하던 강한 역시 무소식이었다. 아무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그건 평화시에나 할 소리였다. 얼마전 영광면(현재의 영광읍)이 수복됐다고 하는데, 백수면은 아직까지 인민군 세상이었다. 경찰의 치안이 백수면과 염산면에는 미치지 못할 때였다.
대궐 같은 기와집에 변고가 생긴 지 80여 일이 지난 뒤였다. 한 무리의 불청객이 솟을대문을 넘었다. "강한이 나왓!" 강한이 백수면 집에 오지 않은 것을 뻔히 아는 이들이 있지도 않은 이를 찾은 것이다.
"이 집 아들 어딨소?" 기와집 주인 내외는 신발을 신은 채 대청마루에 서서 호령하는 이들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여기 안 왔어라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간부로 보이는 불청객이 "강영진 동무는 왜 우리들에게 협조를 하지 않는 거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들의 진심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집에 여유있는 곡식도 없었지만 자식들을 죽인 이들에게 금전과 식량을 줄 마음도 없던 차였다. 결국 자식 두 명을 잃은 지 80여 일 만에 강영진·이귀례 부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것도 하필 자식들이 죽임을 당한 천마리 대통머리로 끌려갔다. 1950년 10월 29일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자위대원들은 죽사리 강갑수 형제를 죽이고 또다시 그 부모를 학살했을까? 사실 강영진 내외의 죄(?)라고는 잘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주나 부자는 그들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죄 없는(?) 이들을 학살한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인민위원회와 빨치산에 비협조적이었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군경 수복 전에 '반동의 씨'를 말리겠다는 것이 그들의 진짜 속내였다.
1950년 10월, 전남 영광군 백수면을 장악한 유격대(빨치산)와 마을자위대는 당(조선로동당)이 숙청대상을 결정하면 이를 집행하는 역할을 했다. 이 숙청과정에서 '반동'의 범주에는 가족들까지도 포함됐다. 복수의 씨앗(근원)을 없애자는 것이다.
불갑산
1946년 '10월 사건' 때 영광에서는 영광·홍농·군남면에서 상당히 큰 규모의 시위가 있었고, 시위 군중 12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 이후 영광의 좌익세력은 더이상 공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고, 또 상당수가 수배령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1948년 10월 여순사건 이후 영광의 산간지역에서도 빨치산 활동이 활발해졌다. 영광에는 불갑산, 태청산, 구수산 등 빨치산 거점으로 이용될 만한 산들이 많았다. 특히 불갑산을 중심으로 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 6사단 15연대는 1950년 7월 23일 영광을 점령했다. 이들은 점령 직후 인민재판을 열고 군수·읍장·은행장 등 우익인사들에 대한 처형을 감행했다. 좌익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군경이 수복작전을 시작한 후 더욱 극심했는데, 영광 지역은 군경 수복이 늦어지면서 후퇴했던 좌익들이 다시 마을에 돌아와 군경가족이나 우익가족, 빨치산에 비협조적인 주민들을 살해했다.
한편 마산·부산 등으로 후퇴했던 전남 경찰은 10월 3일 광주를 수복한 후 각 지역별 수복작전에 돌입했다. 영광 경찰은 다른 지역보다 늦은 10월 21일께 영광을 수복했다. 영광 지역 수복이 이처럼 늦었던 이유는 9․28 서울수복 이후 지리산 방면으로 빠지지 못한 전남·북지역 빨치산들이 여차하면 바다를 통해 탈출이 가능한 영광으로 몰리면서다.
다른 한편 국군 제11사단이 1950년 말부터 '전남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공비(빨치산) 토벌작전에 임했다. 이 과정에서 군경은 영광지역 수복작전을 벌이면서 지역 주민을 '빨치산' 또는 '부역자'로 몰아 어떠한 조사과정이나 적법절차 없이 살해했다(진실화해위원회, '전남 영광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1)-불갑면', 2022).
5세부터 60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