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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 반토막, 1년에 4개월은 쉬는 방송 스태프들

[K-콘텐츠 전성시대의 그늘] ① OTT 이후 변화한 방송환경, 불안정한 방송노동자들

등록 2024.08.07 10:56수정 2024.08.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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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자는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과 창작자 그리고 넷플릭스 모두에게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4월, 넷플릭스 공동 CEO 테드 서랜도스를 만난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이야기이다. 넷플릭스는 앞으로 4년간 3조 3천여억 원을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태프들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조차도 출연할 드라마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한국 드라마를 K-콘텐츠 전성시대로 이끈 넷플릭스가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대통령을 만났는데, 왜 방송 스태프들은 전례 없는 불황을 말하고 있을까?
a  지난 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를 만났다.

지난 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DC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를 만났다. ⓒ 연합뉴스

 
스트리밍 버블이 지나간 후에

드라마 산업의 주도권은 방송사가 아니라 넷플릭스로 이미 넘어갔다. 코로나19 동안 콘텐츠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특히 <오징어 게임>을 비롯하여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 드라마는 어느덧 K-팝과 함께 '국위 선양'하는 문화 산업의 가장 맨 앞에 놓여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불과 1~2년 만에 완전히 뒤집혔다.

사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OTT의 기세는 어느새 시들해지고, 넷플릭스를 제외한 OTT의 실적은 시원치 않다. 디즈니플러스는 계속해서 한국시장 철수설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고, 지속적으로 적자의 늪에 허덕이는 국산 OTT는 합병 등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던 넷플릭스마저도 계정 공유를 금지하는 등 수익성 높이기에 나섰다. 대대적으로 제작했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도 축소하고, 드라마보다는 예능, 스포츠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a 채널 종류별 방영 드라마 추이 방영 시작 시점 기준으로 정리. 코로나19 이후로 TV 채널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는 채널과 종류 상관없이 확연히 감소 추세이다. 특히 지상파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연대별_대한민국의_텔레비전_드라마_목록 )

채널 종류별 방영 드라마 추이 방영 시작 시점 기준으로 정리. 코로나19 이후로 TV 채널에서 방영하는 드라마는 채널과 종류 상관없이 확연히 감소 추세이다. 특히 지상파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자료 : https://ko.wikipedia.org/wiki/연대별_대한민국의_텔레비전_드라마_목록 )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OTT 열풍이 한바탕 사그라지고 있지만, 다른 방송 콘텐츠 제작이 다시 활기를 띠는 것은 아니다.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튜디오 중심의 외주제작이 일반화되고, 방송사 자체 제작 방식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제작 및 편성하는 드라마의 수도 감소하였다. 2020년 이후, 지상파 드라마는 반토막이 났고, 다른 TV 채널 드라마 제작도 정체되었다. 최근에는 제작을 완료하고도 편성하지 못한 콘텐츠가 쌓여 있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영화 산업은 살아날 기미가 없고, 그로 인하여 방송 분야로 넘어왔던 종사자들도 다시 돌아갈 곳을 잃은 상태이다. 세계를 마치 제패한 것처럼 보이는 K-콘텐츠 산업의 앙상한 실체이다.

커지는 스태프들의 고용불안


급격하게 성장한 산업의 갑작스러운 침체에 가장 직격탄을 맞게 되는 것은 일하는 종사자들이다. 지난해부터 심각해진 구직난과 고용불안은 방송 제작 현장의 노동환경을 악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동안 드물었던 대규모 임금 체불도 벌어지고 있다.
단기간 취업과 실업이 반복되는 것은 방송 일을 하는 이들에게 매우 익숙한 일이다. 드라마는 길어야 반년 정도로 촬영이 끝나고, 시즌제 방식이 정착된 대다수의 예능도 제작 기간이 길지 않다. 투입된 기간 집중적이고 압축적인 노동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문제는 방송 산업 전반의 악화 속에서 쉬는 기간이 길어지고, 일하는 동안에는 부당한 일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지난 3월과 4월에 방송 종사자들에게 고용불안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응답한 179명은 87.7%가 2030이었고, 프리랜서‧위임‧도급계약 방식(74.3%)으로 계약하고 있었다.


a 사실상 실직 상태 비율의 월별 추이 월별로 방송 분야에서 10일 미만으로 일했다는 응답 비율. 최근 12개월동안 34.4%가 사실상 실직 상태였다. 최근으로 올수록 10일 미만으로 일한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이다(방송 종사자 179명 응답 결과).

사실상 실직 상태 비율의 월별 추이 월별로 방송 분야에서 10일 미만으로 일했다는 응답 비율. 최근 12개월동안 34.4%가 사실상 실직 상태였다. 최근으로 올수록 10일 미만으로 일한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이다(방송 종사자 179명 응답 결과).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우선 최근 12개월을 두고 방송미디어 분야의 일을 10일 미만으로 한 달이 언제인지를 물었다. 프로그램 제작에 정식으로 투입되는 것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며칠간 일을 나가는 경우가 흔하게 있기 때문에, 10일 미만으로 일한 달을 물은 것이다. 이는 곧 사실상의 실직 상태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적게는 24.2%(2023년 9월), 높게는 45.9%(2024년 2월)가 사실상 실직 상태였다고 답하였다. 이러한 응답의 12개월 동안의 평균은 34.4%로, 평균적으로 방송 스태프들은 3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에 놓여있던 것이다. 스태프 개인 입장에서는 지난 1년 중에서 4개월은 방송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는 기술직군일수록, 경력이 좀 더 길수록,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촬영·조명·그립 등의 기술직군에서는 37.8%, 경력 5년 이상 10년 미만인 경우가 37.1%, 경력 10년 이상인 경우에는 38.0%로 평균 응답보다 3~4%p 높게 나타났다. 기술직군은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마쳐야 투입되는데 최근에는 프리프로덕션에서 제작이 무산되는 경우들이 많아진 점 그리고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경력이 짧은 스태프를 더 선호했을 것이라는 점이 원인으로 보인다.

짧은 고용 기간조차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일을 아직 못 구한 스태프들은 상시적으로 구직난에 처해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일을 하고 있는 스태프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태로 일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계약 종료 사유에 대해서 묻자 자발적으로 계약을 종료했다는 응답은 21.8%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과반(57.5%)은 프로그램 제작이 종료됨에 따라 계약이 종료되는 통상적인 경우였지만, 프로그램 제작이 갑작스럽게 중단되거나 해고 및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경우는 20.6%에 이르렀다. 계약기간 자체가 드라마의 경우 길어도 6개월, 예능의 경우는 1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을 감안하면, 애당초 짧게 정해져 있는 근로계약 기간조차 고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a 질주를 멈춘 K-콘텐츠 산업 그리고 방송 노동자의 고용불안 토론회 2024년 7월 2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강유정 의원·이기헌 의원·이용우 의원 주최로 방송 현장 고용불안 실태조사 결과 발표 국회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질주를 멈춘 K-콘텐츠 산업 그리고 방송 노동자의 고용불안 토론회 2024년 7월 2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강유정 의원·이기헌 의원·이용우 의원 주최로 방송 현장 고용불안 실태조사 결과 발표 국회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러한 상황은 방송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익명 단체 대화방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여도, 일을 못 구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힐난과 문제제기하면 잘릴 거라는 말들이 나온다. 일을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계와 진로에 대한 고민도 반복적으로 이야기가 나온다. 뒤바뀐 방송 산업의 상황에 따라 악화되고 있는 노동환경 속에서,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주체나 논의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종사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순응 또는 이탈이다. 현재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거나, 이를 견디기 어렵다는 업계를 떠나는 것이 낫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호황이 있으면 불황이 있는 법이라 이러한 상황이 자연스러운 경기 변동일 수도 있다. 늘어났던 콘텐츠 소비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생기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불안을 온전히 개인이 홀로 이겨내야 한다면, K-콘텐츠의 내일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 활동하는 공익법인입니다. 최근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통해서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K-콘텐츠 전성시대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노동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방송 #드라마 #K콘텐츠 #넷플릭스 #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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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 줄기의 빛,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故 이한빛 PD의 유지를 이어 만들어진 공익법인입니다. 카메라 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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