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항삼학도 유람선 선착장이다. 멀리 영산강 하굿둑이 보인다.
김재근
목포역에서 목포역까지 걷고 또 걸었다. 벼르고 별러서 도착한 유럽 어느 도시에 온 듯 알뜰하게 그리고 악착같이. 지치면 버스를 탔고 힘들면 택시도 불렀다. 8월 7일, 입추(立秋)가 무색하게 여전히 햇살은 날카롭고, 공기는 뜨거웠다. 이가 부러질 정도로 딱딱한 아이스크림이 몇 걸음 만에 흘러내렸다. 그날, 3만 2천 보를 걸었다고 만보기가 알려 주었다.
도시도 기억을 한다. 어떤 형태로든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거리에 건물에 물건에 이야기를 담고 특징을 만들어간다. 목포는 물 위의 도시다. 시가지의 80%가 바다였다. 일제 강점기 때 는 호남 최대 항구도시였다. 유달산을 경계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었다. 언덕배기 북촌은 조선인, 신시가지 남촌은 일본인 거주지.
목포역 광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5분쯤 걸으면 오거리가 나온다. 원도심 주요 공간을 연결하는 교차로로, 조선인과 일본인 거주지역의 경계점이었다. 오거리에서 유달산 쪽으로 몇 걸음, 옛 동본원사 목포별원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사찰로 해방 후에는 교회로 지금은 문화센터로 이용한다. 지붕 경사가 급한 낯선 일본식 건물 앞에서 실감했다. 목포의 기억 속에 들어섰음을.
'목포근대문화공간'의 시작
기억의 입구에서 무모하게 길을 나건 걸 잠시 후회했다. 카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그리 헤픈 남자는 아닌데, 순전히 더위 탓이다. 바게트에 얼음 동동 띄운 커피 한 잔. 이런 행복이라니. 눈부신 창밖 세상이 새삼 무섭다. 왼손엔 지도 오른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앞뒤로 배낭을 맨 외국 관광객이 지나간다. 낯선 저 남자에게서 친밀감이 느껴진다. 세상에 이런 사소한 것에 위안을 받는 날씨라니.
오거리에서 바다 쪽으로 넘어지면 배꼽 닿을 즈음에 2층의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이다. 지금은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이용된다. 이곳부터 '목포근대문화공간'이 시작된다.
과거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에서 목포역 방향으로 이어진 대표 도로를 중심에 놓고, 유달산·목포진‧항구를 연결하는 구조이다. 구 일본영사관을 비롯하여, 동양 척식 회사, 교회, 민가,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군사 시설인 목포진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주변 해안가를 간척하여 근대 시가지가 형성된 이후, 항구도시 목포 사람들 삶의 터전이었다. 1980년대까지도 목포 상권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당시의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대로 잘 남아있다. 이 일대가 등록문화재 제718호로 지정되어 지붕 없는 문화재로 불린다.
옛 영화가 퇴락하여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화신연쇄점을 돌아 상가 거리로 들어섰다. 도로 좌우로 당시의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마주 보며 늘어선 쭉 뻗은 도로다. 계속 나아가면 민어 거리를 지나 근대역사관으로 이어진다. 모자아트갤러리 앞에서 좌측으로 향했다. 목포항에서 혹시 '옷자락 아롱 젖은 부두의 새악씨('목포의 눈물' 가사 중)'를 만날 수 있나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