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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도시에서 3만 2천 보를 걷다

[목포 한 바퀴] 목포역에서 평화광장 야경까지 하루 코스 추천

등록 2024.08.14 10:23수정 2024.08.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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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포항 삼학도 유람선 선착장이다. 멀리 영산강 하굿둑이 보인다.

목포항 삼학도 유람선 선착장이다. 멀리 영산강 하굿둑이 보인다. ⓒ 김재근

 
목포역에서 목포역까지 걷고 또 걸었다. 벼르고 별러서 도착한 유럽 어느 도시에 온 듯 알뜰하게 그리고 악착같이. 지치면 버스를 탔고 힘들면 택시도 불렀다. 8월 7일, 입추(立秋)가 무색하게 여전히 햇살은 날카롭고, 공기는 뜨거웠다. 이가 부러질 정도로 딱딱한 아이스크림이 몇 걸음 만에 흘러내렸다. 그날, 3만 2천 보를 걸었다고 만보기가 알려 주었다.

도시도 기억을 한다. 어떤 형태로든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거리에 건물에 물건에 이야기를 담고 특징을 만들어간다. 목포는 물 위의 도시다. 시가지의 80%가 바다였다. 일제 강점기 때 는 호남 최대 항구도시였다. 유달산을 경계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었다. 언덕배기 북촌은 조선인, 신시가지 남촌은 일본인 거주지.


목포역 광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으로 5분쯤 걸으면 오거리가 나온다. 원도심 주요 공간을 연결하는 교차로로, 조선인과 일본인 거주지역의 경계점이었다. 오거리에서 유달산 쪽으로 몇 걸음, 옛 동본원사 목포별원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사찰로 해방 후에는 교회로 지금은 문화센터로 이용한다. 지붕 경사가 급한 낯선 일본식 건물 앞에서 실감했다. 목포의 기억 속에 들어섰음을.

'목포근대문화공간'의 시작

기억의 입구에서 무모하게 길을 나건 걸 잠시 후회했다. 카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그리 헤픈 남자는 아닌데, 순전히 더위 탓이다. 바게트에 얼음 동동 띄운 커피 한 잔. 이런 행복이라니. 눈부신 창밖 세상이 새삼 무섭다. 왼손엔 지도 오른손엔 스마트폰을 들고 앞뒤로 배낭을 맨 외국 관광객이 지나간다. 낯선 저 남자에게서 친밀감이 느껴진다. 세상에 이런 사소한 것에 위안을 받는 날씨라니.

오거리에서 바다 쪽으로 넘어지면 배꼽 닿을 즈음에 2층의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옛 호남은행 목포지점이다. 지금은 대중음악의 전당으로 이용된다. 이곳부터 '목포근대문화공간'이 시작된다.

과거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에서 목포역 방향으로 이어진 대표 도로를 중심에 놓고, 유달산·목포진‧항구를 연결하는 구조이다. 구 일본영사관을 비롯하여, 동양 척식 회사, 교회, 민가,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군사 시설인 목포진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주변 해안가를 간척하여 근대 시가지가 형성된 이후, 항구도시 목포 사람들 삶의 터전이었다. 1980년대까지도 목포 상권의 중심이었다. 지금도 당시의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대로 잘 남아있다. 이 일대가 등록문화재 제718호로 지정되어 지붕 없는 문화재로 불린다.

옛 영화가 퇴락하여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화신연쇄점을 돌아 상가 거리로 들어섰다. 도로 좌우로 당시의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마주 보며 늘어선 쭉 뻗은 도로다. 계속 나아가면 민어 거리를 지나 근대역사관으로 이어진다. 모자아트갤러리 앞에서 좌측으로 향했다. 목포항에서 혹시 '옷자락 아롱 젖은 부두의 새악씨('목포의 눈물' 가사 중)'를 만날 수 있나 싶어서.
 
a 목포원도심 유달산에서 본 목포원도심이다. 사진 중앙이 목포항, 좌측이 삼학도이다. 멀리 보이는 건 영암이다.

목포원도심 유달산에서 본 목포원도심이다. 사진 중앙이 목포항, 좌측이 삼학도이다. 멀리 보이는 건 영암이다. ⓒ 김재근

 
목포항은 동남쪽에 영암 반도가 남서쪽에 고하도가 뒤쪽엔 유달산이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는 천혜의 항구다. 남쪽 포구라 하여 '남포‧맑포‧목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지형이 외나무다리처럼 길고 홀쭉하다고 해서 그리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종은 1895년 무안군에서 분리하고, 1897년 관세 징수를 목적으로 개항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이곳에서 1흑(一黑- 김) 3백(三白 - 쌀 면화 소금)을 무진장 실어 갔다.


먼 항해를 다녀온,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배들이 한가로웠다. 햇살이 내려앉고 갈매기가 몇 마리 날았다. 연락선은 어디로 떠나려는지 더운 숨을 토해냈다. 여객터미널 건물은 웅장했다. 국내선 대합실엔 띄엄띄엄 부채질을 하는 사람이 보였지만, 국제선 대합실은 할머니 한 분이 그림처럼 졸고 있을 뿐 한산했다. 가거도로 홍도로 흑산도로 가거도로 가는 배편 안내서가 대신 인사했다.

항구 뒤편은 목포진이 있었다는 바위 언덕이다. 그 아래에 항동시장과 민어 거리가 있다. 정오의 시장은 발걸음이 뜸했다. 병어가 제법 많다. 대개가 세꼬시 감이다. 건들면 금방이라고 눈을 깜박거릴 것 같고, 바다에 던지면 바로 헤엄쳐 갈 것 같다. 박찬일 셰프는 <오늘의 메뉴는 제철음식입니다>에서 병어를 이렇게 소개했다.
"작고 반짝이는 병어는 마치 별을 따다가 놓은 듯하다. 유순한 강아지처립 고분고분하게 보여, 그 눈망울을 보면 도저히 회칼을 들이밀기 어렵다. '세꼬시'란 뼈 채로 썰어낸다는 뜻의 '세고시(せごし)에서 유래한 일본식 요리 용어다. '세밀하고 고소하게 써는 법'은 아니다. 기름기 가득한 병어 갈빗살 회는 유리창에다 던지면 찰싹 붙을 정도다. 입에 한 점, 지방이 녹으면서 살점이 잇몸에 달라붙는다. 그러고선 솜사탕처럼 혀에서 녹는다."

소년 김대중의 공부방
 
a 소년 김대중 공부방  목포항이 삼학도가 환하다. 두 개의 봉우리 사이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보인다.

소년 김대중 공부방 목포항이 삼학도가 환하다. 두 개의 봉우리 사이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보인다. ⓒ 김재근

 
병어의 맛을 추억하며 계단을 오르니 목포진지다. 세종 때(1439년) 이곳에 처음 진을 설치하고 만호를 파견하였다. 시야가 탁 트였다. 전면으로 목포항과 삼학도 영산강 너머 영암땅까지 한눈에 보인다. 우측으로 고하도, 뒤로 유달산이다. 가히 군사요충지라 할 만하다. 객사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외롭다. 바다 쪽으로 소년 김대중 공부방이 자리한다. 하의도 섬 소년이 목포로 유학 와서 꿈을 키웠던 곳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처음 본 목포를 별천지였다고 소회했다. 그는 목포에 올 때마다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목포의 딸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가락도 구슬프지만, 노랫말 또한 예사롭지 않다. 님이란 이순신 장군을 가리킨 것이니 나라를 뺏긴 설움을 토해낸 것이다. 목포만의 노래가 아니라 나라 잃은 겨레의 노래였다."

옆방에선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을 쉼 없이 불렀다. 창밖으론 목포항이 삼학도가 환하다. 액자 속 그림 같은 풍경이다. 삼학도는 목포의 반도이면서 섬이다. 사모하는 이를 기다리다 지쳐 죽어 학으로 환생했다가 그리운 임의 활에 다시 죽어 섬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목포 앞바다 간척으로 육지가 되어 봉우리만 남았다. 작은 봉우리는 유람선 선착장이다. 가운데 봉우리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자리 잡았다. 큰 봉우리는 이난영 묘지를 품은 공원이 들어섰다. 목포를 대표하는 두 인물이 이웃하여 봉우리를 차지하고 삼학도의 전설을 지키고 있다.
 
a 구 일본영사관 왼쪽은 시내 중심 도로에서 본 구 영사관 건물. 오른쪽은 영사관 2층 중앙 창에서 본 시내 풍경 사진 끝에 고하도 케이블카 기둥이 보인다.

구 일본영사관 왼쪽은 시내 중심 도로에서 본 구 영사관 건물. 오른쪽은 영사관 2층 중앙 창에서 본 시내 풍경 사진 끝에 고하도 케이블카 기둥이 보인다. ⓒ 김재근

 
목포진지에서 노적봉 아래까지가 일본 거주지였다. 민어거리로 내려가서 입맛만 다시고는 문화공간을 걸었다. 꼼지락 실험실이, 주막집이, 유달동 사진관이 지났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에 차려진 근대역사관 2관에서 땀을 닦았다. 심상소학교를 보고 성옥기념관에도 들렀다. 드디어 근대역사관 1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일본영사관 건물이다.

원근법에 충실한 점령자의 오만이 담겼다. <에디톨로지>에서 김정운은 "베르사유 궁전 앞 그 넓은 정원을 왜 만들었을까. 루이 14세는 끝까지 가 봤을까. 이 궁전은 원근법을 구현한 절대권력의 상징이다. 원근법은 세상을 보는 눈은 하나여야 한다는 독점적 시각이다. 그래서 소실점은 권력이 된다. 자신의 눈이 닿는 공간 끝까지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문양을 넣었다. 자신의 성이 소실점의 정 반대편에 위치하도록 했다. 자신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자기 권력 안에 있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 건물이 그랬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을 뒤로 두고 고하도가 정면으로 보이는 높직한 터에 위치했다. 중앙으로 일직선 대로를 두고 바둑판식으로 시내를 만들었다. 대로에서 바라보면 소실점은 영사관 2층 발코니로 향했다.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끝에는 고하도가 있다. 바로 앞에는 우체국을 두고, 국도 1호선과 2호선 도로의 원점으로 잡았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지배하고자 하는 점령자의 의지였다.

고하도와 노적봉은 이순신 장군과 관련 있다. 고하도는 명량대첩 후 106일 동안 머무르며 노량해전을 준비한 곳이고, 노적봉은 짚으로 바위를 둘러쳐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서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a 서산동 벽화거리 어촌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조성했다.

서산동 벽화거리 어촌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조성했다. ⓒ 김재근

 
일본인 거주지역 서쪽 언덕배기가 서산동 벽화거리다. 1980년대 시간이 멈춘 곳이다. 산자락을 따라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다. 영화 〈1987〉에서 연희(김태리)네 집인, '연희네슈퍼'에서 보리마당까지 골목이 거미줄처럼 이어진다. 사람들이 정착해 마을을 이루기 전에 넓은 보리밭이었다.

"어부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항구가 가깝고 평지보다는 싸게 터전을 마련할 수 있어서죠. 그들의 애환이 어린 말이 있는데, '조금 새끼'입니다. 사리에 고기를 잡고 조금 물살이 잔잔할 때 집에 왔습니다. 모든 어부가 그러했으니 부부가 만나는 시기가 다들 같았죠. 아이들 생일이 거의 비슷해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어촌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조성했다고 한다. 골목엔 빈집과 생활하는 집이 가게가 있고, 찻집이 있고, 체험장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거리가 떠올랐다. 이름과 달리 벽화가 없는 동네다. 주민들이 지워서다. 생활에 도움은커녕 피해만 되는 관광객의 귀찮아서란다. 발길이 조심스러웠다.

평화광장에서 본 야경
 
a 평화광장 위, 갓바위에서 바라 본 평화광장 야경. 아래, 춤 추는 바다 분수.

평화광장 위, 갓바위에서 바라 본 평화광장 야경. 아래, 춤 추는 바다 분수. ⓒ 위, 김재근. 아래, 최순희

 
목포는 야경의 도시였다. 평화광장 밤 풍경은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다. 바닷가 산책길 따라 정원과 식당과 카페가 이어졌다. 처음엔 미관광장이라 하였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여 평화광장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바닷바람 벗삼아 갓바위 해상보행교까지 걸었다. 산책하는 운동하는 구경하는 사람들을 지나서. 강아지를 유일한 관객으로 두고 기타 연주 버스킹을 하는 분에게 박수도 보냈다. 광장 중앙에 있는 춤추는 바다 분수 앞에 앉았다. 음악과 레이저가 조화로운 초대형 분수다. 안개처럼 피어오른 물이 바람에 실려 얼굴에 닿았다. 짭짤한 시원함이다. 목포의 낮이 이성적이라면 밤은 감성적이었다.

항구에선 이별과 만남이 교차한다. 이별은 사연이 되어 노래와 영화가 된다. 어쩌면 항구라는 이름 자체만으로 낭만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일지도. 거기다 밤바다까지 더해졌으니. '애달픈 정조'는 낭만이 되었다. 목포엔 일본에 상처 입고 이난영과 눈물 흘렸지만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키워 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어제의 아픔을 견뎌냈으니, 오늘은 평화를 이야기하며 낭만을 그리워해도 되겠다.

낭만은 남녀 사이에 있다는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다. 낭만적이라는 말은,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고 감상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뜻도 있지만, '철 없다'는 의미도 있다. 어쩌면 허구나 상상에 가깝다. 낭만을 찾는 것은 정말 철없는 짓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찾고도 싶다. 한 번쯤 철부지가 되어보고 싶은 꿈, 그 꿈에서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하니까. 여행의 한 가지 이유일지도 모른다.

막차 떠날 시간이 가까워온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다. 나는 기차를 타고, 강물은 바다가 되어 흐르고. 평화를 마음속 종이배에 실어 물에 띄웠으니, 신안 천사섬을 돌고 돌겠지.

여행을 계획하고 이끈 화순군 최순희, 안내와 도움을 주신 최영민‧박인숙 그리고 차주면‧김상안‧김문심 목포시 전남문화관광해설사님께 고마움 전한다.
덧붙이는 글 화순매일신문에 실린다. 네이버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다.
#최순희전남문화관광해설사 #전남세계관광문화대전 #화순매일신문 #목포여행 #쿰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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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파니스'는 함께 빵을 먹는다는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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