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산(자료사진).
Unsplash의Ananya Bilimale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이 들어찬 앤솔로지다. 하서찬, 이준희, 이경란, 안리준, 박지음, 김도일, 권제훈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여럿이 인류문명이 당면한 지속불가능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을 써냈다. 겉을 보면 환경이란 주제로 묶이는 듯하지만, 깊이 살펴보면 오늘의 인류가 채택한 체제, 자본주의와 그를 호위하는 정치며 사회체제를 생각하게 한다.
감당 못할 쓰레기, 인류를 위협하다
쓰레기를 직접 소재로 삼은 작품이 여럿이다. 표제작인 이경란의 '최소한의 나'는 쓰레기가 포화상태에 이른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쌓일 대로 쌓인 쓰레기가 감당치 못할 문제를 일으키는 시대, 화자인 나와 한때는 가장 가까웠을 너, 그리고 끝내 지켜내지 못한 아이의 이야기가 독백조로 풀려나온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이, 오직 인간만이 그렇게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고, 사들이고, 싫증 내고 가차 없이 내다 버려 곳곳에 거대한 산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네가 사는 곳은 사정이 조금 다를 수도 있을까? 이 땅의 상위 1퍼센트에 들어야 살 수 있다는 그 지역의 주민들은 누구보다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면서도 쾌적한 환경을 누리고 있을까? -79p
상위에 선 자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쓰레기를 그보다 못한 이들이 감당하는 이야기는 이 소설집에 실린 여러 소설의 주제라고 불러도 좋겠다. '최소한의 나'가 그렇듯 노골적인 현실의 반영이기도, 훨씬 많은 상상이 가미된 가상의 배경이기도 한 가운데 소비와 폐기의 비대칭이 빚어낸 부조리함이 활자로써 펼쳐진다.
권제훈의 '플라스틱 베이비'는 다른 나라, 또 대도시의 쓰레기를 받아 처리하는 폐기물 처리업자의 이야기다. 코앞에 있는 유명한 휴양지에서 배출된 쓰레기를 관광객 눈에 띄지 않게 싹 가져와 처리하는 일도 그의 업이다.
쓰레기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밀어 버리는 이 나라의 행태에도 대대로 이어온 쓰레기 처리 가업을 이어온 아버지의 자부심은 대단하기만 하다. 쓰레기가 더 많이 배출될수록 그의 업 또한 빛날 것이 아닌가. 처리 방법이라곤 보이지 않는 섬으로 가져가 쏟아 붓고 돌아올 뿐이지만, 그것이 애국이며 대단한 기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그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나니, 한 눈에도 남과 다른 모양이다. 눈에 띄는 외양에 따돌림까지 당하지만 병원에서 피부에 미세 플라스틱에 섞여 있단 진단을 받은 뒤론 도리어 아버지의 자부심이 된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춘 신인류라나. 쓰레기로 뒤덮인 세상과 감당할 수 없는 변화를 겪는 인간의 이야기가 파국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소설은 현실에 뿌리내린 상상이 얼마만큼 낯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준희의 '소리의 길' 또한 마찬가지. 바다 밑에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을 조성한 인류의 선택을 해저도시에서 태어난 아이의 눈으로 보여주는 이 소설 또한 특별하지만 지속될 수는 없는 신인류를 그린단 점에서 '플라스틱 베이비' 와 통한다. 대화와 기억으로 얼핏 드러나는 바다 위 인류의 실패와 고래로 상징되는 자연적 존재가 대비되는 가운데, 소통과 연결을 방법을 잊고 고립된 인간의 오늘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하서찬의 '상자'는 지구온난화로 육지가 물에 잠겨 말 그대로 멸망을 앞둔 한국의 파국을 그린다. 대기업 부장, 성공한 삶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아버지는 몰락하는 세상을 감당치 못하고 정신병을 앓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갈라서 집을 나선 지 오래, 딸인 나 홀로 가정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집 안을 가득 채운 택배상자는 소비에 중독된 현대인을 상징하는가. 그를 쓸어낼 듯 덮쳐온 물살은 마침내 오늘의 문명을 허물어버릴 멸망을 말하는지 모를 일이다.
대전환이냐 대멸망이냐... 인류의 선택은
안리준의 '아웃빌리지'는 판타지에 가까운 낯선 이종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그린다. 파충류를 연상케 하는 종족의 도시 비타빌로 유학을 온 주인공은 아웃빌리지라 불리는 부족의 일원이다. 한때는 제가 유학 온 이 도시의 설립자였던 부족이 외딴 숲으로 밀려나 살아가는 현실이 미국이며 호주 같은 개척지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원주민 부족과 정착자들의 대비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은 끝없이 솟아오를 것 같던 지하수가 마른 뒤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준다. 비타빌과 아웃빌리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의 대비, 또 유한한 자원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에 의존하는 삶을 이어온 방식 따위가 대안이 없는 현 인류의 삶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박지음의 '붉은 물고기 되기'는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 인근 마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노후한 원전을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체험학습이 이뤄진다. 그 앞에서 체험학습을 온 아이 중 하나의 할머니이자 대책위 위원장인 옥순의 저항이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주민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대책위 위원장의 아들을 채용하고, 또 그로부터 발전소의 사람이 된 아들과 거리감을 느끼는 옥순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를 보는 양 현실적으로 다가든다.
김도일의 '은혜로운' 또한 현실에 발을 디디고 섰다. 제철회사 상무인 주인공이 제철소가 일으킨 환경오염을 고발한 지역방송국 보도에 대응하는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얼개다. 입사 뒤 앞만 향해 내달린 오경환 상무다.
그는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지역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설은 그 믿음의 균열점을 집요하게 노린다. 회사를 위한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란 그의 믿음은 과연 타당한가. 자그마한 균열이 마침내 크게 벌어질 때 독자는 작중 화자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루는 인지부조화, 감춰진 진실과 믿고 있는 거짓 사이의 간격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책 <최소한의 나>는 문학에 익숙한 독자라도 얼마간 낯선 인상을 받을 만한 소설집이다. 실린 작품의 착상이며 구성, 완성도에 일부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근래 한국 문학 가운데 흔히 마주할 수 없는 시도란 건 분명하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 경제규모의 확장이 인류를 구원하리란 믿음이 곳곳에서 깨져나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실패 또한 수습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에너지 수급과 쓰레기 처리, 무엇보다 생산부터 폐기에 이르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문제를 인류는 감당치 못하고 있다.
문학이 자리를 틀고 앉아 매일 하던 이야기만 반복한대서야 세상과 유리된 오락과 구분할 수 없는 일이다. 문학이 인간의 사상과 예술, 지성의 정수로써 작가와 독자를 잇는 창이라면, <최소한의 나> 같은 작품이야말로 기꺼이 제 역할을 모색하는 책이라 할 것이다.
최소한의 나
하서찬, 이준희, 이경란, 안리준, 박지음, 김도일, 권제훈 (지은이),
득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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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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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챙기라는 세상, 거기서 '최소한'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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